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77 일
(사도행전 13-28장)
<내용 요약>
사도행전은 전체를 3개의 단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통독 범위는 사도행전 13장에서 28장까지입니다.
A.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통해 성령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1-7장)
B.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사도들을 통해 성령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8-12장)
C. 땅 끝까지 사도들을 통해 성령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13-28장)
(13-14장)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
(15장) 예루살렘 공회
(15:36-16장)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
(17장) 제 2차 전도 여행 계속,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의 바울
(18장) 제 2차 전도 여행의 결론, 고린도에서의 바울, 에베소의 아볼로
(18:23-21:14) 제 3차 전도 여행, 에베소의 바울(19장), 3차 전도 여행의 계속(20장)
(21장) 바울의 예루살렘 행, 바울의 체포
(22장) 예루살렘 폭도들 앞에서의 바울의 변증
(23장) 산헤드린 앞에서의 바울의 변증
(24장) 벨릭스 앞에서의 바울
(25장) 베스도 앞에서의 바울
(26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
(27장) 바울의 로마 호송, 유라굴로 폭풍 속에서… 난파
(28장) 바울의 로마 도착
<주요 통독 자료>
1. 베드로에서 바울로…
우리는 10장에서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가 설교할 때에 말씀을 듣는 중에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면은 잠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회심하고 다메섹에서 밤중에 도망을 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초대 교회로부터 환영 받지 못한 바울이 그의 고향인 다소 지방에 돌아가 은둔하고 있었던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수리아의 안디옥에 내려가 이방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운 바나바가 아무래도 율법에 능통하면서 동시에 헬라어에 익숙한 바울이야말로 이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데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다소 지방으로 가서 바울을 만나 함께 안디옥에 와서 말씀을 가르치면서 최초의 이방인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11장의 내용이며, 이 교회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제자들이 듣게 된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헬라어의 <크리스티아노스>로서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들”, 혹은 “그리스도를 꼭 닮은 자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런 이름이지요? 여기까지의 장면은 오늘 우리가 통독할 13장 이후의 이방인 선교의 시작이 어떻게 태동되었는지 일종의 복선을 깔아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2장으로 들어가면서 야고보의 순교와 함께 베드로가 체포되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가 출옥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던 성도들과의 재회의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성령께서 일하셨던 사도행전의 전반부인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의 직접적인 기록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물론 후에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 그 이후에도 베드로의 사역이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로 계속되었고, 초대 교회의 구전에 의하면 훗날 로마에 들어가 로마의 크리스천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결국 로마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이제 본격적으로 바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누가는 2차 전도 여행에서부터 직접 바울 일행과 함께 하면서 목격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전개해 갑니다. 어쩌면 이 부분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누가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된 이야기와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 그리고 사울의 핍박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간 사람들의 활동, 그 와중에 예수님께서 예견하셨던 대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더 나아가 이방인 지역으로의 복음 전파의 포문이 어떻게 열려졌는지를 이야기 해 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바나바의 역할과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 속에 바나바와 같은 은사를 가진 아름다운 섬김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갈망합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었지만, 그의 섬김의 아름다움 때문에 제자들이 그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나바는 “격려의 아들(Son of Encouragement)”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람어에서 “바(Bar)”는 “~~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바스(Nabas)”는 용기, 혹은 격려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볼 때 바나바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격려가 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사역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당한 일들을 증명해 주면서 그를 받아들이도록 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1장에서 우리가 이미 이야기 한 대로 안디옥 교회를 세운 것은 바나바이지만 그는 그 교회가 바울에게 적격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바울을 찾아다가 그를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필요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주님께 드리도록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요청하셨을 때, 그는 기꺼이 사울과 함께 제 1차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자신이 주도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안디옥 교회를 그는 미련 없이 떠난 것입니다. 주님의 필요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는 1차 전도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 일행을 부를 때 누가가 항상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1차 전도 여행 때만 해도 바나바가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루스드라에 들어갔을 때에 사람들이 바나바를 “쓰스(제우스)”라고 부르고 사울을 “허메(헤르메스)”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그 일행에서 주로 바나바가 능력을 행했고, 바울은 주로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우스가 헬라의 주신이었고, 허메는 제우스의 일종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1차 전도 여행이 끝난 후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몇몇 유대인들이 율법주의적인 논쟁으로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을 시험들게 한 것을 발견해서 분노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공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그 공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들도 지지 못했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방인들을 율법이 정하는 유대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특별한 약속들, 즉 할례나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등으로부터 자유케 하자는 결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1차 전도 여행에서 세워진 이방인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그들에게 이 기쁜 결정사항을 전해주고 그들을 견고히 세워주자는 제안을 합니다. 둘은 이 일에 의견 일치를 보였지만 마가의 문제로 결국 갈라서고 맙니다. 바나바는 당연히 바울과 함께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조카였던 어린 마가를 그렇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었던 구브로 섬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었던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를 지나 1차 전도여행의 기착지들이었던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등지를 지나 소아시아를 향해 갔던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아시는 데로 성령께서 아직은 소아시아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고 결국 성령님의 인도로 그들은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사역은 유럽으로 그 영향력을 펼쳐가기 시작했고, 훗날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의 연구”에서 “바울이 드로아에서 배타고 마게도니아 지방으로 건너갈 때에 오늘의 발단된 유럽의 문명이 그의 배에 실려 있었다”고 술회할 정도로 바울의 전도는 세계 역사의 판도를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유럽에 복음을 전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문명에 있어서 소아시아나 혹은 그 이전에 있었던 주로 적도 부근의 포근한 날씨와 큰 강을 끼고 일어난 비옥한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곡물들로 부를 소유했던 문명들과 견주어 볼 때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기도 좋지 않고, 땅은 철분과 석회질 등으로 농사에 전혀 적절치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유럽은 세계 문화를 주도할 지역으로 여겨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럽 사람들의 영혼은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렇게 창의적이고 개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결국 유럽 사람들은 그 각박하게만 보였던 유럽의 토지 속에 감추인 보화인 지하자원들을 캐내어 산업혁명의 눈부신 반전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의 판도는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거기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간 사람들에 의하여 근현대 역사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떠오른 미국을 탄생시켰으니까요.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바울은 역사를 뒤바꾼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아름다운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장의 초반부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들을 보여줍니다. 우선 거기에 리스트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명단을 보십시오. 여기에서 누가는 안디옥 교회의 다섯 명의 지도자들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이 시므온입니다. 그의 별명은 “니게르”였는데, 이는 “흑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구레네 시몬,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보리 언덕에 올랐던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인물은 루기오입니다. 그는 구레네 사람이었고, 따라서 이 사람도 아프리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20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안디옥 교회의 설립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인물은 마나엔인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번역본에서는 “헤롯의 절친”이라고 되어있고, 또 어떤 번역본에서는 “헤롯의 집안에 입양된 헤롯의 양 형제”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헤롯은 바로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인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헤롯 왕가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가 바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다섯 명의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다양함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왕실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온 레위지파의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 유학해서 율법에 능통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함께 주님을 금식하며 섬기고(예배하고)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 때,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날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그것은 결국 그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안디옥 교회의 기동이며 반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기꺼이 그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세계 선교의 아름다운 시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을 통독해 가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말씀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들 모두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처럼 쓰임받을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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