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46 일
(잠언 25-31장)
<내용 요약>
잠언서는 크게 다섯 단원으로 나누입니다.
1. 지혜와 어리석음의 비교(1-9장)
2. 솔로몬의 잠언-솔로몬 자신에 의하여 기록되고 편집됨 (10-24장)
3. 솔로몬의 잠언-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함 (25-29장)
4. 아굴 왕의 잠언 (30장)
5.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잠언 (31장)
오늘 우리들의 성경 통독은 잠언 25-31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잠언서의 세 번째 단원인 25-29장은 솔로몬의 잠언을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재편집한 잠언집입니다. 오랫동안 전해지던 잠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을 것이고, 히스기야는 자기 백성들을 더 많은 잠언으로 교육하기 원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에게 솔로몬의 잠언들 가운데 누락되었던 부분들을 발굴해서 잠언집을 편찬하도록 지시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는 이미 우리가 읽어온 잠언들이 많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0장: 아굴 왕의 잠언
31장: 르무엘 왕의 잠언
<주요 통독 자료>
1. 은 쟁반의 금 사과
잠 25:9-11입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참으로 너무나 멋진 잠언입니다. 얼마나 명확한 진리인지요. 여기에 나오는 “금 사과(Golden Apple)”는 정말 금으로 만든 사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렌지를 뜻합니다. 솔로몬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오렌지를 생산하던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어쨌든 참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은 쟁반에 금 사과”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그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봅니다. 예컨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 같은 여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분노를 일순간에 잠재우고 문제가 야기될 자리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도록 만드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이 얼마나 필요하고 그리운지요. 미국의 테네시 주 중부 지방의 한 시골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 나오는 여인은 아주 때에 맞춘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유명했답니다. 특별히 그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나오면 그녀는 어김없이 적절한 칭찬을 생각했다가 목사님을 격려해 드리곤 했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설교는 정말 칭찬할 만한 설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적절하고 아름다운 지혜의 말로 목사님을 격려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은 정말 목사님이 너무나 설교를 못했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설교는 정말 칭찬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했습니다. 그려나 뭐라고 목사님께 말할까…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녀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두 그녀의 입술을 바라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는 정말 너무나 좋았어요.”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본문을 선택하셨어요? 정말 최고세요!” 정말 아름다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은사를 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2. 미련한 자(잠언 26장)
잠언 26:4-5입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흥미로운 잠언입니다. 어떤 때는 바보에게 우리가 말대꾸를 했다가 같이 바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바보에게 답변을 줌으로써 그를 좀 똑똑해지게 만들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이 좀 나아질 수 있는 바보인지, 아니면 나까지 바보로 만들 바보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바보 같은 짓, 미련한 짓을 계속 반복하는 일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잠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세상에 이보다 더 더러운 말이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정말 더러운 일이지요. 베드로는 이 잠언을 이렇게 인용했습니다. 벧후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돼지를 데려다가 목욕시키고 머리 땋아주고 향수 뿌려서 꽃 돼지를 만들어 주고 방을 예쁘게 꾸며서 꽃 방석에 앉혀 놓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돼지는 분명 죽던지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돼지 우리로 돌아가던지 둘 중 하나를 할 것입니다. 본성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가지고 왔던 죄악 된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사람이 교회 안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절을 보니 미련한 자보다 더 심한 사람이 나옵니다. 잠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더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와우~!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보다 훨씬 못합니다.
3.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잠언 27:1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이 잠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잠언입니다. 그러나 이 잠언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잠언 속에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개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로 이 잠언은 우리들에게 우리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도록 가르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내일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실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참으로 돌연한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밤 자고 나니까 갑자기 자신이 유명해졌더라”고 말합니다. 그런 돌연한 깨어남은 성경에도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일할 수 있었던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아닌 레아가 자신의 곁에서 자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돌연한 깨어남이죠? 보아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옆에 자신을 메시아의 조상이 되게 만들어 줄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 룻이 잠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연한 깨어남이죠. 하만에 의하여 나무에 달리기로 되어있던 그 날, 모르드개는 자신을 매달려던 나무에 하만이 매달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127개 도에 살던 유대인들 모두의 목숨을 구하신 영광스런 날을 맞은 것입니다. 돌연한 깨어남입니다. 전도서 3장에서 솔로몬은 우리의 삶이 수많은 종류의 돌발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상반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교차되어 다가오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세상에는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자연히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 수많은 돌발 변수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할 필요도 없고, 내일 일을 지나치게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고, 우리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본문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내일이 하나님의 것인 대신,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고 오늘을 성실로써 채우라는 것입니다. 스페인어로 “내일”은 <마냐나(Manana)>입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핑계 중 하나가 바로 “마냐나”입니다. “내일 할게요, 내일 줄게요, 내일 봅시다.” 그래서 스페인에는 속담이 있는데 “미루고 미루는 길은 곧 never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말입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만다는 뜻입니다. “내일은 잘 할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라고 “내일, 내일”을 주장하지 말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해야 합니다.
4. 아굴 왕과 르무엘 왕의 잠언 (30, 31장)
잠언서의 마지막 두 단원은 각각 30장과 31장입니다. 30장은 아굴 왕의 잠언이고, 31장은 르무엘 왕의 잠언입니다. “아굴”이 대체 누굴까요? 아굴은 성경에 전혀 나와 있지 않은 인물이며, 역사의 기록에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 “아굴”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잠언이 팔레스타인 밖에서 쓰여진 잠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설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어떤 자료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아굴이 솔로몬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잠언서의 서론부가 이 책이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 더러 영어 번역본들 중에는 아굴을 비롯한 1절에 나오는 이름들을 보통명사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굴의 이름 뜻은 “모으는 자”로서, “잠언과 지혜로운 말들을 모으는 자”라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솔로몬의 별명일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야게>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이 <야게>는 “pious” 즉 “경건한 사람, 독실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경건한 사람,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 가정이 100% 확실하다고는 말 못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31장은 르무엘 왕의 잠언입니다. 이것은 르무엘이라는 왕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입니다. 30장의 “아굴” 왕이 솔로몬이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쟁이 좀 있지만, 여기 나오는 르무엘이 솔로몬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습니다. 솔로몬에겐 별명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별명도 있습니다. 애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삼하 12:25을 보면, “여디디야”라는 애칭이 나옵니다. 이는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르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이 솔로몬의 모친인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붙여 준 애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31장은 “어떤 아내를 얻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가르치는 어머니의 교훈입니다. “현숙한 여인”에 관한 잠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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