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통독 제 32 일
(느헤미야 01-13장)
<내용 요약>
느헤미야는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누입니다.
1. 성벽의 재건(1-7장)
2. 부흥과 개혁(8-13장)
오늘 우리들의 통독은 느헤미야 전체를 통해 계속됩니다.
1장: 예루살렘의 남겨진 자들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
2장: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
3장: 성벽과 문들의 재건
4-6장: 대적들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
7장: 느헤미야의 백성들 등록
8장: 에스라가 주도한 수문 앞 집회
9-10장: 부흥, 그리고 그 결과
11-13장: 개혁, 또 다른 결과
<주요 통독 자료>
1. 느헤미야와 3차 귀환대
어제 에스라서를 통해서 우리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갈 때에 3차에 의하여 이송되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70년이 지나자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유다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는 자들은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고 왕과 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에 느부갓네살의 손자 벨사살 임금 때에 바벨론이 메대, 파사 연합 군에 의하여 패망하고 메대의 다리오 왕이 한 때 권력을 장악했지만 후에 고레스 왕의 페르시아가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서 이제 페르시아에서 포로생활을 계속하던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하여 1차 귀환대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고, 2차 귀환대가 에스라의 인도 아래에서 돌아와 재건 된 성전을 예배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가 이끄는 제 3차 귀환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3차 귀환대의 주 임무는 성벽의 재건이었습니다. 먼저 성전이 재건되고, 둘 째로 예배가 회복되고, 그 후에 성벽이 재건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언제나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순서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된 후에 하나님께서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성벽과 성벽의 문들
느헤미야 3장에서 우리는 재건된 성벽에 있었던 열 개의 문들을 봅니다. 이 성벽과 성벽의 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벽이십니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구원 안의 백성과 구원 밖의 백성들이 나누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가 그것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나누는 유일한 경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요 14:6; 행 4:12-13).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에 뺑 둘러가며 존재했던 열 개의 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는 신자들의 삶의 성장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인 것입니다. 먼저 양문(the Sheep Gate)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 양문은 제사에 쓸 양을 데리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들어가실 때에는 주로 이 양문을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의 제물이 되신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문들과는 달리, 이 양문의 경우는 문빗장과 문고리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 말은 이 양문은 언제나 밀면 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떤 제한도 없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믿을 준비가 되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은 어문(the Fish Gate)입니다. 이는 구원 얻은 모든 신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문은 옛 문(the Old Gate)입니다. 이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우리가 옛 교훈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옛 진리 가운데로 돌아가야만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은 골짜기 문(the Valley Gate)으로 이 문은 아주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문지방이 매우 낮아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옛 교훈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다 보면 우리가 겸손히 낮아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복종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낮아져야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분문(the Dung Gate)으로 이는 예루살렘의 재래식 화장실 통을 비워 가지고 성 밖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낮아지려면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이 분문이 그것을 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문은 샘 문(the Fountain Gate)입니다. 이 샘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기쁨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교만과 자랑들을 배설물처럼 버리면 우리들의 영혼에서 성령의 충만함과 기쁨의 샘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문은 수문(the Water Gate)입니다. 이 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냅니다. 시편 1편의 시냇 가에 심기운 나무도 역시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린 신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문이 일곱 번째 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7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완전합니다. 다른 문들은 전부 “수리했다”는 기사가 있지만 수문은 “수리했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보수공사가 필요 없었던 문… 그것이 바로 수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수공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처음 쓰여진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됩니다. 증보개정판 같은 것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변화가 필요 없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여덟 번째 문이 마문(the Horse Gate)인데, 이는 영적 전쟁을 의미하는 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영적 전쟁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적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적 전쟁을 열심히 싸우다 보면, 아홉 번째 동문(the East Gate)이 나오는 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성전에서 떠올라 성전 동편을 향한 문을 지나고 예루살렘 동문을 지나서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에스겔은 이 임재의 영광이 예루살렘 동문으로 들어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동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열심히 싸우다 보면, 우리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 번째 문은 합밉갓문(the Gate of Mipcad)입니다. 이는 히브리어의 밉갓(Mustering; 군대에서 사령관 앞에 모든 병사들이 무장하고 집결하는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난 후에는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영혼들이 우리 주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불려나가 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신자들은 이 심판에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이 말한 상급 주시는 심판대(the Bema Seat)에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행한 대로 상급을 받기 위하여 그 심판대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낫 놓고 기억자도 몰랐던 사람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를 믿는 성도들이 삶에서 경험하게 될 놀라운 영적 성숙의 과정들에 대하여 이렇게 선명한 그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이름들이 담긴 문들을 매일 드나들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이 놀라운 예루살렘 성벽의 문들,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놀라운 경험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한 손엔 망치를 한 손엔 말씀을
성도들이 이 성벽과 문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도비야와 산발랏 같은 대적들의 공격과 미혹이 쉬지 않고 있었음을 우리는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군대는 항상 한 손엔 망치나 공사용 도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항상 한 손에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의 도구들을 들고 영적 싸움을 싸우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아름다운 사역의 하모니
포로 시대 이후의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선 항상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일하게 하셨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평신도(정치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자를 묶어서 둘 씩 짝을 지어 사용하셨습니다. 스룹바벨이라는 정치적(평신도) 지도자와 여호수아라는 제사장(영적 지도자)를 짝을 지어 사용하셨고, 느헤미야라는 정치적(평신도) 지도자와 에스라(학사겸 제사장)라는 영적 지도자를 짝을 지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의 현장에도 항상 이런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공했고, 수문 앞 광장에 특별히 나무 강단을 지어 에스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어제 에스라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에스라는 순수한 말씀의 가르침을 통하여 큰 부흥을 일으켰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하모니… 이런 하모니가 여러분의 교회와 사역의 현장에서 늘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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