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위로와 긍휼

천국생활 2016. 2. 18. 07:41

위로와 긍휼
사49:8-16
 

[주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구원해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으며, 너를 시켜서 뭇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너희가 살던 땅이 황무해졌지마는, 내가 너희를 다시 너희 땅에 정착시키겠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는 '나가거라.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 하고 말하겠고,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밝은 곳으로 나오너라!' 하고 말하겠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먹거리를 얻게 할 것이며, 메말랐던 모든 산을 그들이 먹거리를 얻는 초장이 되게 하겠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무더위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며, 샘이 솟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만들고, 내 백성이 자유스럽게 여행할 큰길을 닦겠다. 보아라, 내 백성이 먼 곳으로부터도 오고, 또 더러는 북쪽에서도 오고, 서쪽에서도 오고, 아스완 땅에서도 올 것이다.“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

주현절 후 4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부디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늘의 평강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28일 우리는 기가 막히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함께 예배하며 찬양대를 지휘하셨던 우리 청파의 지휘자 윤주원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겁니다. 이 땅에서 겨우 쉰다섯 해 사셨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게 부름 받아 가시느라, 이별의 말 한 마디 못 나눴습니다. 유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청파 공동체의 충격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서로에게 온전한 위로를 나눌 수 없다는 걸 느낍니다. 부디 유가족에게 하늘 아버지의 위로하심과 긍휼하심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 밤 저는 아직 빈소를 마련하지도 못한 유가족을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터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이었기에 길이 막힐 이유가 없는 곳이건만, 차들은 거북이 걸음이었습니다. 추돌사고가 났나 싶었지만, 터널을 다 빠져나와 속도를 다시 회복할 때까지, 그 어떤 사고나 공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답답한 그 터널이 꼭 그 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방이 욱여쌈을 당하여 뚫고 나갈 구멍 하나 없고, 도무지 그 이유조차 헤아릴 수 없어 가슴이 먹먹했으니까요. 주님, 어떻게 이러셨나요? 저희는 어찌해야 하나요?

주전 6세기 중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슷한 아픔과 질문 속에 있었습니다. 영원히 이어지리라 여겼던 다윗 왕국이 무너졌고, 야웨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습니다. 개개인의 삶의 터전은 황량함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폐허일망정 고향에 살고 싶은 소망은 무참히 구겨졌습니다. 아버지의 땅,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땅, 공동체가 굳건히 삶을 견지했던 땅을 뒤로 하고, 먼 이방의 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한 해 두 해 그리고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래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묘사하는 그들의 현실을 살펴봅시다. 우선 그들은 황무해진 땅 위에 서 있습니다. 거기서는 그 어떤 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무심한 바람 소리만 윙윙거립니다. 또 그들은 감옥에 갇힌 죄수와 같습니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이 다닐 수 없습니다. 내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영혼조차 짙은 어둠 속에 갇혔고, 도무지 숨을 쉴 수조차 없습니다. 발바닥 아래는 폐허요, 사방은 꽉 막혀 있으니, 그 마음이 회한과 탄식으로 시커멓게 타들어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넋을 놓은 채 널브러져 있다가도, 한편으론 앞으로 다가올 고통과 죽음 앞에 두려워 떨며 깜깜한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바스러질 것 같은 존재가 그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제2이사야가 등장합니다. 그는 외칩니다.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40:1)
하나님께서 이제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시려고 한다는 외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겠다는 선포입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다.” (49:8)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히 신뢰할 때, 그들은 한 걸음 내딛을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그들에게 “나가거라.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49:9) 말씀하십니다.
어둠 속에 갇힌 그들에게 “밝은 곳으로 나오너라!”(49:9)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이 말씀으로 감옥 안에서도 자유의 빛을 보게 되고,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포는 짙은 어둠에 한 줄기 환한 빛을 선사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서 짙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깨시고, 빛을 허락하셨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즐비한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안심시키려고 달콤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팎의 악한 모든 세력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새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 있는 말씀으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뢰할 만한 존재의 진심어린 위로의 말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그를 환하게 만드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작년 초 제 아내의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셨습니다. “목사님, 어떡해요. 그래도 제가 정말 많이 기도할게요. 사모님 좋아질 거예요.”하시며 제 손을 잡아주신 할머니 권사님의 진심어린 위로. “목사님, 내가 어떡해서라도 사모님 꼭 고칠거야.”라시며 힘을 주어 잡아주시던 장로님의 위로. 작년 한 해 저와 제 아내는 평생 가장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몸으로 겪었습니다.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들은, 아무리 투박하게 표현되더라도, 그 안의 사랑과 진심의 에너지로 인해, 크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분들의 위로와 기도로, 저희 부부는 오늘도 숨을 쉬며 이곳에 살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은 허공에 부서지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 소망과 힘을 공급하셨습니다. 오늘 이 순간 짙은 어둠 속에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곁 가장 가까이에서 울부짖고 있는 이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십시오. 더 나아가 이 시대의 아픔 속에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하늘의 위로를 성심껏 전하십시오. 이사야 당시나, 지금 이 시대에나, 주님과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위로는, 온갖 알 수 없는 고통과 억울한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 위로할 수 있습니다. 새롭고 희망찬 상황으로의 전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고 이웃을 향해 전한 위로가 능력을 발휘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위로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몸소 움직여 일하십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먹거리를 얻게 할 것이며, 메말랐던 모든 산을 그들이 먹거리를 얻는 초장이 되게 하겠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무더위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며, 샘이 솟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만들고, 내 백성이 자유스럽게 여행할 큰길을 닦겠다.”(49:9b~11)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시겠다고, 이제 자유인이 되어 밝은 곳으로 나가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신 뒤에, 먹고 마실 거리 또한 당신께서 제공하십니다. 쉴 곳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들이 다닐 길을 닦으십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직접 개입해 주십니다. 위로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길을 떠난 이가 도중에 쓰러지지 않고 마침내 이스라엘 땅에 귀향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십니다. 육체와 자연 환경이라는 제한을 지닌 연약한 인간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고 실제적으로 도우심으로써, 당신의 위로의 말씀을 긍휼하신 행동으로 완성해 나아가십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란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앤과 하워드에게는 곧 8살 생일을 맞이할 아들 스코티가 있습니다. 소설은 엄마가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 예약하고, 그 아이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의사는 그 애가 곧 깨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며칠간의 검사와 치료 끝에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미리 주문 제작해두었으나 찾아가지 못한 생일 케이크 때문에, 빵집 주인은 밤에 그 집에 전화를 했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오해가 생깁니다. 부부는 빵집으로 찾아가서, 사연을 모르는 빵집 주인에게 케이크의 주인공 8살 스코티가 죽었음을 분노 섞인 목소리로 알립니다. 그 때, 빵집 주인은 하던 일을 멈춥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탁자를 치우고, 부부를 앉히고,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아들을 불시에 잃은 부부 앞에서 빵집 주인은 뭘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그는 커피와 막 구운 계피롤빵을 가져와서,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고 말합니다. 그들 셋은 한밤중에 시작하여, 희미한 새벽 햇살이 비칠 때까지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설은 곧 8살 생일을 맞이할 소년의 뺑소니 사고라는 아이러니 가득한 어둠에서 시작했지만, 희미한 아침 햇살이 그들 위로 비치는 장면으로 맺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 한가운데에는, 자기 일을 멈추고 자리를 마련하여 따뜻한 커피와 계피롤빵을 대접한 긍휼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조심스레 건넨 작은 초컬릿 한 조각이 큰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려봅니다. 수줍게 내어놓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시작된 사건은, 단순히 오천 명의 배를 채운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채워졌고, 그들의 영혼이 충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큰길을 따라 동서남북 사방에서 고향땅으로 돌아올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긍휼로 살뜰히 보살피십니다. 위로의 말씀으로 그들의 가슴에 희망의 빛을 비추기 시작하셨다면, 긍휼하신 돌보심으로 집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마침내 고향 땅에 이르게 해주셨습니다.

제2이사야는, 절망의 어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위로의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이 그들 사이에 한 줄기 빛으로 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여전히 젖먹이 어린아이(49:15)라는 걸 아시나 봅니다. 혼자 일어나기 힘겨워하는 아이 곁에 서시고, 그 아이의 먹고 마실 걸 공급하시고, 그 아이가 쉴 공간을 마련하시고, 그 아이가 큰 길로 기운내 걸어가도록 도우십니다.
거창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다시 희망을 회복하고 발돋움하려는 존재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긍휼과 사랑은 작더라도 아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전해지는 법입니다.

우리 곁에는 위로받고 다시 막 일어서 보려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사 고레스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거리, 마실 거리, 쉴 곳, 큰 길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를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발돋움하려는 이들에게 긍휼의 손길이 구체적으로 가 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고, 우리를 위해 신실하게 일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픔 가운데 있는 이웃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고, 그들을 위해 작은 사랑의 수고를 행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부디 슬픔과 애통, 고통과 상처, 소외와 억울함의 어둠 속에 있는 모든 분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고, 새 희망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개입하시는 긍휼하신 역사하심 가운데 마침내 광명의 땅에 당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의 말과 긍휼의 행동을 어둠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로 전하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49:13) 찬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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