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전도사 간증
저는 1963년 포항 구룡포 바닷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을 때 부터 저의 가정은 불행했고
후처인 저의 어머니는 의처증, 알콜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매를 맞아가며
막내인 저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수십번 기절하며 모진 매를 맞던 어머니는 제 나이 11살때, 결국 저를 두고 도망을 갔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저는
11살때부터 학교를 중퇴하고
남의 집 식모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13살때,
37세 이복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데
그 후로도 몇 차례
그 이복오빠를 죽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그때, 주일학교를 조금 다녔던 저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오직 죽겠다는 각오뿐인 제 인생에 뛰어든 그분의 끈질긴 전도로
저를 이십리 길을 걸어서 읍내의 작은 개척교회로 이끌어 냈습니다.
18살때
새벽마다 주님제단에 엎드려 다시 살기로 기도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경북 청송의 산골을 흔들어 깨우는 4-H 농촌 청년의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갔고
2년 뒤에는 경상북도 4-H 회장으로 뽑혔습니다.
-청송교도소 투쟁기-
다시 살아난 저의 인생은 죽음에서 건져 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4-H 회장이 되어 농촌을 익히고 배워가며 새벽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20살이 되던 어느 날,
가까운 곳에 문을 열었던
청송 교도소 청송 보호 감호소에서 4-H 회장인 저를
재소자 정신 교육 강사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첫 강의 때였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 숨겨진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도 한 때 나를 짓밟았던 그 인간(나의 이복오빠)을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치를 떨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수많은 재소자들의 모습은 바로 저의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선 채로, 돌이 되어 얼마를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주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나를 살려주신 주님께 이제부터 나의 일생을 이 버려진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나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리고
그날로부터 20년(40세)을 달려
지금까지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송 보호 감호소는 81년 말에 생겼는데 당시 6천 여명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제5공화국의 등장으로 사회보호법이라는 잘못된 악법의 희생자들이었고
징역을 살고 난 후에야 '보호감호'라는 이름아래 무조건 7년 내지 10년을 덤으로 살아야 하는
억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저는 새벽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신 용기로 갇힌 자 6천명을 등에 업고
당시 (85년~89년)사회보호법 폐지를 외치며 그 청송에서 중앙지 신문에 계속 글을 투고 하는데
대대적인 투쟁을 하게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죽음을 각오한 나의 투쟁은 주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무서운 정치적 통치아래
살수가 없었던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재소자들은 단식투쟁을 안에서 벌이고 저는 밖에서 매스컴으로 알리며
정부를 상대로 싸웠는데 89. 7. 14 대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사회 보호법 위헌" 이라고 말입니다.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축복-
89년 12월(나이 26살),
맨몸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진 저의 인생은 어느 기도원으로 찾아가 공짜로 주는 밥을 얻어먹며
두 달 동안 하루 4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두 달 후 월세방을 얻어 기도원에서 나왔고 가구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그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두명 있었습니다.
밤마다 2명의 주일학교 애들을 불러 저의 월세방에서 무료로 한글 공부를 가르치는데
사실 저도 그 당시 성경 쓰기를 하며 한글을 터득한지 얼마 안 된 상태였습니다.
가르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두 명의 아이는 한글을 다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두 명 아이의 엄마는 나를 찾아와 아예 애들 과외를 부탁했는데
초등학교 중퇴인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용기를 내어 설마 2학년쯤이야 못 가르치랴 하면서 시작했는데
애들은 매달 학교 성적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초등 전과정을 저 혼자 공부하며 낮에는 아이들 과외 선생이 되었는데
시작한지 1년 반만에 과외 인원은 30명이 넘어섰습니다.
그때 공장을 그만두고 전문 과외 선생으로 나섰습니다.
그런데...어느날 불법과외에 적발되고 과외는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져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도 학원을 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였습니다.
-나의 가정, 하나님의 응답-
저는 어릴 때의 성폭력으로 인해 남자를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이란 것을 생각 할 수가 없었습니다.
27살의 어느 날,
한 남자의 끈질긴 관심과 구애가 시작되는데
그 남자는 제가 기도하던 목사 사모의 꿈을 완전히 깨버리는 조직폭력의 앞잡이요
대구 동성로를 누비며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개망나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에서 내 놓은 깡패 우두머리인 그 남자는 알고 보니 이혼 남이었고 아들(8. 10살) 둘 까지
달린 채 본인은 기소 중지자인 몸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 왔는데
자신과 결혼해 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며 농약병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3일 동안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는데
요한복음 12:24 '한알의 밀알'의 말씀을 주셨는데
결국, 저는 그 남자와 두 아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보고 울며 차라리 당신이 죽겠다며 식음을 전폐하며 누우셨습니다.
저는 불쌍한 두 아이를 안고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내 목숨처럼 사랑하게 해 주시고
내 몸으로 자식을 낳아 이 애들과 편애하지 않기
위해 나는 자식을 낳지 않고 이 애들만 나의 전부로 키워 주님께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변화시켜 주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새벽마다 울음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옛날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매일 술과 도박으로 밤을 새우고 예수를 믿기는커녕
어느때부턴가 집에 오면 나를 구타하는데 칼을 들고 죽인다고 발로 짓밟고, 차고, 목을 조르며
온몸이 걸레처럼 늘어지게 패며 아이들과 어머니까지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저는 맞아서 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불쌍한 두 아들을 데리고
교회로 도망가며 밤마다, 새벽마다 녹아 내리는 눈물이 심장을 태운 어느 날,
남편이 학원 기사 부인을 데리고 집을 나간 97년 여름, 억수 같이 비가 오는 그 빗줄기 속에서
고등1, 중3이 된 두 아들을 버려 둔 채 저는 학원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미친 듯이 울며 "하나님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이가 주님이시지요,
내가 언제 저런 인간을 달라 했나요, 주의 종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미친 인간이 나의 피를 말리고 때려 더 이상은 살수가 없습니다.
그 통곡 속에서 아래로 뛰어 내릴 그 찰나에 울며 매달리는 두 아들... 울부짖으며
"엄~마, 엄마, 우리는 어떡해요, 엄마..."
빗줄기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이 나를 죽을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저는 그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왜 나를 다시 살리십니까"를 외치며 그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후 집을 나간 남편이 돌아와 어딘가에 이끌린 듯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묵묵히 회개의 기도를 드리던
남편이 어느 날 새벽,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울며 돌아와 제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저의 가슴속에 메아리쳐 옵니다.
"내가 그를 만졌노라" 그 음성에 나는 통곡을 하며
"주여! 주여!"를 외치며 우는데
남편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회개의 눈물과 엄청난 통곡을 쏟아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에게도 용서를 빌며 며칠동안 울음에 잠겨 있던 남편은
그 후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머리까지 빡빡깎고...
99년부터 교회 전도사로 봉사하며 지금까지 찬양과 기도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행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와 지금은 어떤 남편보다도
오직 주님과 가정을 위해 살아가는 멋진 남편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저의 마지막 기도, 주의 종의 사모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이루어주신
멋진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이제서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저의 살아온 삶을 한권의 책으로 내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너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이라 울면서 기도하기를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안된다고
수 많은 날을 울고 있는데 결국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어 부족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책을 인쇄 할 때에 2001년 신정부터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교회에 간증을 하는 또다른 길을 걷게하신 하나님,
부족한 글을 두서없이 적어 보내 드림에
죄송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심은 더욱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음을 믿고 오직 기도하며 나아겠습니다.
박순애 전도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