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법과 도덕 사이

천국생활 2012. 8. 21. 05:40

김석우 부장검사(광주지검 특수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250여 년 전 ‘정귀농’이라는 7살된 아이가 자작한 ‘산’이라는 시다. 이 시를 읽은 아버지가 그 뜻을 묻자 정귀농은 ‘본래 작은 것은 큰 것을 가릴 수 없으나, 작은 산이 앞에 있고 큰 산이 떨어져 있으면 앞산이 작아도 뒷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앞산만 보이기에 앞산이 큰 줄 알지만 정작 큰 뒷산은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라고 답한다. 이를 들은 아버지는 7살된 아이가 벌써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다며 감탄한다. 훗날 그 아이는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된다. 그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유네스코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다산 정약용을 세계문화인물로 선정하고 2012년 올해를 탄생 250주년 기념해로 지정하였다.

철학, 정치, 경제, 역학, 천문 등 모든 분야에 능통한 다산 정약용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뛰어난 법률가라는 점이다. 오늘날 법무부 차관에 해당하는 형조참의까지 역임한 그는 법과 도덕의 긴장관계를 중시하며 ‘지나친 엄형’과 ‘예외 없는 법집행’을 반대하였다. 그 대척점에 선 인물이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인데, 그는 엄형이 국가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아버지의 시체를 불태우면 자손에게 문둥병이 전염되지 않는다는 속설에 따라 묘를 파헤쳐 불에 태운 ‘정득춘’에 대해 그는 대역죄로 사형에 처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정약용은 음란한 여자라는 헛소문을 동네에 퍼뜨린 노파를 18번이나 칼로 무참히 찔러 살해한 양갓집 젊은 부인 ‘김은애’에 대해 뼛속에 사무치는 억울한 무고를 당한 것에 대한 울분을 못이겨 살인을 하게 된 점을 고려하여 석방을 명한 정조의 처분을 적극 지지한다. ‘정리지서(情理之恕)’라고 하여 ‘사람의 도리에 맞으면 용서한다’라는 취지에서다. 정약용은 한편으로 ‘정’에만 치중한 관대한 처벌은 또한 반대하였다. 술김에 벌어진 살인에 대해 관대하게 처벌해 온 당시 경향을 비판하면서 ‘타고난 어리석음은 하늘이 만든 재앙이지만 술주정의 재앙은 스스로 지은 것이므로 이를 똑같이 용서할 수 없다’며 이른바 ‘주사(酒邪)’로 인한 감경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한다.

법과 도덕 사이에서 합리적 양형을 추구하려고 한 법률가 다산 정약용의 모습을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에 다시금 돌이켜 보게 된다.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8월23일 Facebook 이야기  (0) 2012.08.23
2012년 8월21일 Facebook 이야기  (0) 2012.08.21
2012년 8월18일 Facebook 이야기  (0) 2012.08.18
2012년 8월16일 Facebook 이야기  (0) 2012.08.16
2012년 8월13일 Facebook 이야기  (0) 201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