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Q.T

믿음의 가장 탁월한 본보기

천국생활 2012. 3. 23. 19: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

 

 

믿음의 가장 탁월한 본보기로 우리 앞에 서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수만 명의 사람들과 맞먹는 비중을 가진 인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

또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이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인데도 믿는 자들 가운데 말석조차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는 자들의 명단에서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위치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온 교회가 멸망을 당하지 않는 한 신자들의 명단에서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존귀한 위치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부르심을 받는 순간 사람들이 삶의 행복에 있어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친구와 부모와 고향을 떠났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서 모든 즐거움의 원천을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처럼 보였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거하도록 명령받은 땅으로 들어가자마자 기근으로 그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자주 굶주림을 겪고 기근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땅에 거하는 것이 무슨 행복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인심 사나운 이웃을 만나고 그들은 아브라함이 수고해서 판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삭이 태어나지만 이번에는 첫째 아들 이스마엘이 집에서 거의 원수처럼 미움을 받아 쫓기고 버림을 당합니다.

이삭만 홀로 남은 상태에서 이제 잔뜩 늙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마음을 의지하자

하나님은 곧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어찌 인간의 머리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이는 일보다 더 끔찍한 일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어떤  낯선 사람에게 살해를 당했더라도 자연사보다는 훨씬 불행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불행도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결국 그 모든 비바람을 피했다는 이유로

그의 괴로움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말해선 안됩니다.

 

--존 칼빈--

 

 

오늘날 처럼 믿음이 요구되는 때 묵상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고 그 믿음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