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구약의 예수그리스도

에스더에서 찾아본 그리스도

천국생활 2010. 2. 17. 15:25

에스더서에는 신앙적인 용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호와라든가 하나님이라든가 기도한다는 이러한 용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에스더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깊이 숨어있기 때문에 얼핏보면 신앙적요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마는 잘 찾아보면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신앙을 지킨 모르드개
3장 2절에 보면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만은 바사와 메대 나라의 아하수에로 왕의 총리대신으로, 나라의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이 다 그에게 무릎꿇고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절하지 아니한 이유가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고 다만 그가 자기는 유대인이라고 고하였다고만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고전인 (탈굼)(Targum-아랍어 역)이라고 하는 문헌에 보면 모르드개가 말하기를 “사람(하만)이 그렇게 교만할 수 있겠는가? 그도 여인에게서 났고…… 날 때에 울었고…… 살다가 티끌로 돌아갈 자가 아닌가! 내가 그에게 꿇어 절하겠는가?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만 꿇어 절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아니한 이유가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할례받지 못하고 이방 신을 섬기며 세상권세를 악용하여 교만을 부리고 있는 하만에게는 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날마다 모르드개에게 굽혀 절하기를 권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하만에게 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모르드개는 하만의 미움을 받고 아하수에로 왕의 무지로 모르드개 자신이 죽고 또 자기 민족이 전멸을 당할 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르드개는 끝까지 절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마태복음 4장 8절에 보면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두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부분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자기 앞에 엎드려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경배하라는 말의 원뜻은 ‘무엇을 향하여 입맞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예수님에게 자기 앞에 엎드려 자기에게 입맞추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마귀의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셔서 마귀의 유혹을 강력히 거절하고 물리치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만 절하고 그만 섬기라는 말씀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명기 6장 12절 이하에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며……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시고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 성경 역사에 보면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려고 하다가 막심한 고난을 당하고, 또 순교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어 놓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우리 나라의 주 기철 목사님은 일본 귀신(천황숭배)에게 절하는 것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둘째 부분에서는 “네가 내게 절하기만 하면 이 천하 만국과 영광을 네게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자기의 권한 밖의 불가능한 일을 가지고 예수님을 속이고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 뉘것이며 누가 지배하는데 마귀가 제가 감히 이것을 누구에게 주고 말고 하겠습니까? 물론 에베소서 2장 2절과 6장 12절에 보면 악한 영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또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령들에게 일시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악령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악령들이 완전히 영원히 자기 권세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마귀가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을 이렇게 유혹한 마귀가 오늘 우리도 유혹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인데 하물며 우리야 더욱 유혹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모르드개도 예수님도 세상의 물질, 권세, 부귀와 영광 또는 다른 그 어떤 유혹에도 마귀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자기의 신앙, 자기의 지조를 지키고 절개를 고수하였습니다.

2.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에스더
4장 16절에는,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전멸의 위험에 처하자 “죽으면 죽으리라”고 죽기를 결심하고 왕 앞에 나아가서 결사적으로 자기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미워서 모르드개를 죽일 뿐만 아니라 그 민족까지 다 멸하여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3장 12절 이하에는 하만이 흉계를 꾸며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내려 온 전국에 반포하였는데, 그것은 12월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대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보고 에스더는 자기 시녀로 더불어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금식한 후에라고 하였는데 기도하였다는 뚜렷한 문장은 없으나 아마 금식하였으니 기도한 것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규례를 어기고’라고 한 것은 이러한 뜻입니다. 그 당시 그 나라 궁중의 법이 무론 남녀하고 누구든지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금홀을 내밀어서 그 사람을 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죽지 아니하고 살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벌써 30일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내가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에게 들어갔다가 죽는다고 해도 내가 왕 앞에 들어가서 내 민족의 구원을 호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죽기를 결심한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기를 결심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자기는 죽으시고 우리는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것을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대신 죽은 속죄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여 주셨는가,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높으며, 얼마나 감사한가를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의 역사
다음에 5장 2절과 6장 1절에 보면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신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에스더가 부름도 받지 아니하고 왕궁 뜰 안에 들어와 섰을 때 왕이 에스더를 보니 심히 사랑스러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손에 잡고 있던 금홀을 내밀어서 에스더를 가까이 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왕에게 에스더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아니하였다고 하면 에스더는 죽고 유대인은 다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인데 사랑스러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에스더도 살고 유대인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왕에게 에스더가 사랑스럽게 보인 그 마음은 어떻게 생겨진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왕에게 그러한 마음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또 6장 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역대의 일기를 가져다가 읽으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일기를 읽다가, 왕을 모해 하는 흉계가 있는 것을 알고 이것을 고발하여 모살의 흉계를 막았다고 하는 모르드개의 공로를 알고 모르드개를 높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아니하여서 궁중일기를 읽게 하는 이러한 모든 일들도 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옛날 아하수에로 왕에게 역사하신 것과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일반 은총의 역사뿐이었습니다마는 오늘 우리에게는 특별 은총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구속의 은총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구원은 은총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선물입니다.
에스더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절대로 마귀에게 절하지 아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기는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만 공경하는 절대적 신앙을 가지십시다. 나를 위하여 죽어 주신 십자가의 주님을 우러러 봅시다.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