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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목석(木石)인가 --법률신문

천국생활 2008. 10. 13. 15:21

판사는 목석(木石)인가
황적화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은 재판과정에서 당사자들과 막힘없이 소통하는 일, 진실을 발견하고 합당한 법리를 적용해 결론을 내리는 일에 자신을 바친다. 사건마다 정성을 기울이면서 견인불발(堅忍不拔)의 평상심을 간직해야 한다. 또한 “고뇌하지 않는 판사는 기도하지 않는 성직자와 같다”는 명제가 항상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런 까닭일까, 법정에서 보는 판사들의 얼굴은 대체로 엄숙하고 진지한 편이고 때론 감성이 무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간혹 판사들도 웃을 때가 있는 법이다. 다음은 필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들 중 일부다. 소를 제기한 칠순 노인이 법정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다며 10여 분이 넘도록 일장 연설을 했다. 구술변론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충분히 경청하는 것이기는 하나, 무한정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비슷한 언동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 제지에도 꿋꿋이 사자후를 토해내던 노인이 갑작스런 비명과 함께 말을 멈추었다. 자세히 보니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노인의 팔을 꼬집고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내가 제일 무서운 보통남편들의 처지를 생생히 확인한 대목이었다. 장면을 바꾸어 필자가 농촌지역의 법원에서 근무하던 시절로 가 본다. 소액사건 법정을 열 때마다 판결선고를 받은 촌로들 몇 분이 재판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왜 여태 안 가셨냐고 물으면 아까 승소판결한 돈을 내놓으라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고 손을 내미는 바람에 판결금을 받는 절차를 설명해 주곤 했다. 이런 빛바랜 기억들 속에 남아있는 필자의 얼굴은 분명 빙그레 웃는 모습이다.

반면에 판사들을 울리는 상황도 가끔씩은 있다. 묵은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가난한 집안의 어떤 소년이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에게 항의하며 다투던 중 뜻밖에 아버지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소년 피고인이 법정에서 오열하며 장시간 최후진술을 했다. 죄에 대한 벌을 면할 수는 없겠으나, 그 삶이 슬프지 아니한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멍에를 짊어진 채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피고인의 정상이 너무나 안쓰러워 필자의 목울대가 아파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정을 잃어서는 안 될 재판장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싶어 심호흡을 하면서 좌우를 둘러보니 방청객들도 모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한편 판사들이 마음껏 기쁨을 드러낼 수 있는 때도 있다. 예컨대 가족 간의 민사분쟁 등에 있어서 여러 번 공을 들여 쌍방을 설득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눈 끝에 합의를 이끌어 내어 조정을 성립시키는 순간이 그렇다. 평화의 빛이 눈부시다. 기쁜 얼굴로 인사하고 돌아서는 당사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판사의 가슴에도 따뜻한 감동과 보람의 물결이 넘실댄다. 그런 때에는 괴테의 파우스트 속 다음 한 구절이 참으로 적절하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왕년의 유명한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20년 동안이나 ‘마이웨이’를 불렀는데도 매일 밤 무대에 설 때마다 떨렸다고 한다. 판사는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목석은 아니다. 더운 심장 속에 은근한 설렘과 옹골찬 각오를 채우고 오늘도 다양한 인생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법정으로 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