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복음이 요구하는 세 가지 열매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그리고 구원의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믿음이 없다면, 복음은 단지 어리석고 연약한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복음은 이웃사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하는 방식은 함께 구원 얻은 성도들과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사랑이 없다면, 복음은 단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좋은 장식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복음은 소망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지치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에 대한 우리의 소망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하늘에 속한 참된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쌓은 우리의 소망에 부끄럽지 않도록 삽시다.
욥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끝까지 견디어 내고 승리한 모범된 사람입니다.
주님을 ”나의 구속자”라는 것을 흔들림없이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승리했습니다.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사랑한 사람입니다.
오! 그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기 전에 먼저 그분에게 속해야 합니다.
재산이 많고 명예가 우리를 영원한 소망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주를 사랑하며 소망을 가진 사람은 먼저 믿음으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살아 계신 주님께 맡긴다. 이제 그는 나의 것이다”라고 말할수 있을 때 만족합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밖에 없습니까? 그래도, 그 적은 믿음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욥은 인간최고의 환난과 고통가운데서도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알기로는”이라는 말입니다. “만약”이라든가 “그러나”라든가 “어쩌면”이라는 말들은 평안과 위로를 확실하게 죽이는 말 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어둠이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심지어 밤조차 빛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훨씬 오래전 옛날에 욥이 “내가 알기로는”이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근거도 없이 주제넘게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금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근거 없는 희망 위에 서지 않기 위해 우리의 증거들이 옳은지 확실히 점검해 봅시다. 그런 다음에는 단순히 그 근거에만 만족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넓은 전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은 다락방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구속자가 정말 내 것이라는 것을 믿고 사랑하며 소망에 넘치는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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