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복음의 능력 회복----6(옥성호)

천국생활 2008. 3. 15. 18:01

마케팅 교회 극복을 위한 복음의 능력의 회복

 

두 가지 큰 방향

 

1. 복음의 능력 회복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고 믿는 것 외에는 결코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다. 초대교회 당시 십자가는 결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립적인 위치로 남을수 있도록 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마케팅한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이루시기 위해 작정하신 십자가 구원사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결코 인간의 눈에는 아름다울 수 없고 믿어질 수 없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십자가를 누가 보아도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재포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도전이자 반역 행위이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담대함이 회복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구원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시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구원방법 역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죄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십자가가 인간에게 주는 거부감은 2천년이 지났어도 전혀 변할수없는 것이다.

 

사탄은 복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좋은 것을 누리도록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속이고 있다.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가 실종된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올 수 없다. 공의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은 반쪽복음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인간이 복음의 주인공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율법이 먼저 전해져야 한다. 율법이 바로 선포되지 않는 곳에 죄인은 없고 죄인이 없는 곳에 용서와 구원이 소용이 없다. 회심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복이 있어야 한다. 회심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회심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회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를 붙잡는다.

문화에 대하여 바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문화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적하였다.

 

 

 

2.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바라봄으로 회복

 

하나님의 모습을 왜곡하는 한 마케팅은 복음의 원수일 뿐이다. 마케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종시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사라지는 순간 기독교의 교리도 사라진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실종은 필연적으로 예배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주님의 거룩성에 타협한다면 반드시 이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치중하는 마케팅 교회의 설교는 축복과 위로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실종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이 사라지는 가장 무서운 시대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마케팅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편리하고 인기 있고 효과있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놓는다.

진짜를 아는 사람은 가짜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된다. 긍정적이기 위해 분노를 잃어버린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인간이 진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수있는 힘을 얻는다. 예배드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하나님일 때 그 교회속에 마케팅은 결코 발붙일 수 없다. 친절한 하나님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의 주권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자로 서게 된다.

마케팅에 물든 교회는 진리보다 숫자에 더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그 사용 방법론들이 성경이 말하는 바른 진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진리는 사람의 수에 영향을 받지 안는다. 진리는 다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느낀점)

 

광야의 바른 소리가  신학자도 아니요 목사도 아닌 평신도의 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교회의 리더자들이 얼마나 이 세대를 본받고 있는 지를 보여 준다.

 

성공지상주의에 편성한 대형 미국교회들을 향하여 그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모두가 그 교회를 본받을려고 탐방을 하며 최고로 좋은 교회라고 감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알미니안주의에 빠진것으로 본 것은 옳다.

만인구원설은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교회 모이게 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라도 그들이 구원을 선택하도록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 신학은 칼빈의 예정론에 반대되는 신학이다.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칼빈 신학을 한국 장로교가 파괴하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신학도 칼빈과 반대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니 교회가 영업을 하고 이익을 남겨서라도 크게 만들어야 목회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슬픈 일이다.  사람의 필요를 채우면 그 목적이 달성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인 무엇인지 분별하라'  교회다운 교회, 목회자 다운 목회자, 제자다운 제자는 분별력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성령의 사람임이 분명하다.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하지않고 거룩한 성령님을 이용하는 포스터모더니즘 시대에 심리학과 마케팅에 물든 교회들을 향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