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힘써 알자

은혜와 결혼한 사람

천국생활 2008. 2. 14. 09:51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눅13:31~35)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가는 삶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자신의 죽음과 철저하게 연관돼 있음을 아시고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그분이 주시는 평화를 거부해 결국 파괴되고 황폐해질 것을 아시고 통곡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애통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이 예루살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이런 의지는 훗날 제자들의 활동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행 3:19~21).


☞ 예수님의 관심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님과 달리 율법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바리새인 두령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고창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일도 안식일 준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 돌려보내시고 나서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적하셨습니다. 당시에 가축은 가정에서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녀나 가축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관심도 율법이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율법은 형벌이요 그리스도는 은혜입니다.

 

 

 


▧ 묵상에세이


☞ 은혜와 결혼하다
당신과 나는 율법 아래서 태어났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는 율법과 결혼했으며, 그의 후손인 당신과 나도 율법과 혼인한 상태로 세상을 살게 되었다.

율법과의 결혼 생활은 어떨까?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계속해서 비판한다. 또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지적한다. 그는 항상 명령하기 때문에 그와 한참을 살다 보면 더 이상 그가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죽음 이전까지 율법과의 혼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율법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결국 아담 안에서 율법과 결혼한 옛사람은 죽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예수님과 혼인한 신분이 되었다.


은혜와의 결혼은 율법과의 결혼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다. 은혜는 우리를 보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사랑을 쏟아 붓는다. 은혜는 우리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도 은혜는 신실하게 함께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를 모른다면 우리는 율법을 다시 찾아가 해야 할 일을 말해 달라며 그와의 관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우리는 은혜와 결혼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율법이나 규칙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에 의해 이뤄지는 은혜다--「은혜의 영성」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태도, 기질, 육체의 연약함 등에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의 명령에 한 번 순종해 보십시오. 우리가 순종하기로 결심하는 그 순간에 주님은 놀라운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 적용


● 나를 괴롭히는 상황이나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목적 안에 있는 필연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 나의 관심은 사람입니까 일입니까, 혹은 자신입니까 타인입니까? 예수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까?

▧ 기도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진정한 안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이신 주님을 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