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예레미야 애가 3:24 |
하나님 자신이 내 영혼의 기업의 총체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의 은혜나 그의 사랑이나 그의 언약만 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나의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의 뜻에 따라 정말 부르심받은 존재들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 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아멘" 인간의 소욕을 다 만족시켜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무언가 부족해서 “이걸 주세요, 저걸 주세요”라고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기업되신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73:25)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천국으로 날아가 그곳에 거합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우리가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백성인지를 이 세상에 보여 줍시다. 이렇게 해서 그들도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슥 8:23)고 소리칠 수 있게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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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주는 돌아온 탕자를 야단치지 아니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처럼 돌아온 둘째 아들 돌탕에게는 여전히 아버지셨습니다. 그 시대 문화도 아버지의 사랑을 제한할수없었습니다.
체면문화와 절대재산권을 행사하던 시대에 재산을 달라며 아버지를 무시하고 동네 망신을 시킨 아들에게 재산을 준 아버지 그리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도저히 달려가서 만날수없는 그런 시대에 달려가시고 모든 것을 감수하며 남이 보든 말든 껴안아 주시며 입을 맞추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시고 가락지를 끼워주시며 신발을 주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신 아버지, 큰 아들이 자기에게는 염소새끼 한마리라도 잔치를 베풀어주지않았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할때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함께 기뻐하자고 그에게 사정하고 애원하는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머물러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어쩔수 없이 메달려 계신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죽음을 없애고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 자원하셔서 그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주는 우리를 받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신 구세주.
오 주여 우리도 주를 닮아 받아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하소서.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시오니 오늘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관용하며 받아주는 충만한 삶으로 채워주소서. 속죄양이 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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