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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같은 교회를 바라보며---이길소

천국생활 2004. 6. 1. 23:02
 

교회 같은 신학교, 신학교 같은 교회를 바라보며

들어가는 말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는 세계 최장의 안데스 산맥(8900Km)에 연계되어 있는 7나라중, 제일 끝에 위치한 칠레(Chile)이다. 위도,경도상 극동의 반대쪽인걸 보면 한국으로부터 가정 먼 선교지 인 셈이다. 열악한 사역 환경이란 꼭 날씨, 지형, 정치구조 등과 같은 선교국의 특징적인 상황으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선교지가 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그 자체로도 선교사에게는 열악한 사역 환경이 된다. 통계상으로, 본국교회가 선교지 탐방, 장.단기 선교사 파송, 지원 등을 하는 일에 "먼 거리"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선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동족목회 15년, 칠레에서 이방인선교 15년을 뒤로하고, 이제 남은 제3기 15년 사역은 특수부류에 속한 영혼들을 섬기는 포도원의 제11시, 5pm(마20:6) 사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늦은 나이의 지각생 선교사로 칠레를 향하여 출발하던 날, 나는 책 한권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의 성서 신학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여 훌륭한 전도자들을 많이 배출한 하워드(Haward Belben)목사의 '예수님의 선교'(The Mission of Jesus)라는 책인데, 지금도 성경중심의 교육사역을 하게하는 교과서가 되고 있고, 읽을 때마다 선교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선교적 삶을 가르치는 신학교
선교지 복음화에 핵심적인 요건중 하나이자 풀지 않으면 안 될 명제가 바로 ꡐ현지 신학교(교육)사역을 통한 선교의 활성화ꡑ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교육(Pedag´ogico), 전도(Evangelizaci´on), 치유(Restablacimiento)등으로 함축되어 지는 것을 보게(마9:35)된다. J.H.바빙크는 선교학을 '섬김의 학문'으로 정의를 내리면서 선교는 설교처럼 가르치는 사역이 아니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말 했듯이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선교적 삶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책 한권, 글 몇 줄 조차 남기지 아니하셨다. 간음한 여인을 사람들이 돌로 치려 할 때, 땅에 뭔가를 쓰시긴 했지만 그나마 흙먼지와 바람에 의해 곧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보내신 성령과 훈련받은 제자들에 의하여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기록한 글들로 '책 중의 책'이 되었고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분의 가르침과 삶이 입으로만 전해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랜 후, 그토록 생생하게 기록되어 '책 중의 책'이 된 것은 제자들과 함께 스승으로 사셨고, 백성들과 함께 선교사로 사역하신 '삶의 현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그 삶을 배운것이다.
한국교회는 송금하는 선교비의 입․출금 재정보고나, 파송한 선교사가 어떤 큰 일을 해 내는가의 실적 보고를 받는 일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선교사의 삶'이 있는지를 검증 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내어 지원함이 옳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한없이 부럽고 또 부럽다. 죽은자를 살려내신 능력도, 광풍을 꾸짖어 잔잔케 하신 권위도, 감히 하나님 우편의 황금보좌는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이 부러운가? 항상 온유와 겸손으로 본을 보이셨고 지혜와 도전정신 으로 시련을 극복하셨으며, 하늘의 진리를 역설적으로 설파하셨고, 생활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심으로 사람들이 놀래어 감탄케 하신 일, 그리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요13:1)하시어 최후 승리의 무기가 사랑임을 입증하신 바로 그 분의 삶 자체를 나는 부러워한다.
이곳에서 목회자와 선교사훈련 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나는 왜 라틴 아메리카인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한국인 선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신 분이 무엇 때문에 유대인의 신분, 즉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와 사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셨는지, 이제 그분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선교현장에서 조금씩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 보는 것이다.

교회같은 신학교
나는 사역 초기부터 신학교 사역과 교회 사역을 비중있게 병행했다. 그리고 교회같은 신학교, 신학교 같은 교회를 지향했다. 이것은 선교지의 필요상황을 신속하고 적절히 파악한 결과이기도 했다. 영국의 선교신학자 뉴 비긴(Lessile Newbigin)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그것은 전혀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하여 교회 존재의 원인을 분명히 했다. 또 보쉬(David Bosch)는 '선교적 실천을 잊어버린 신학은 신학이 아니라 차라리 '죽은정통'이라고 말 함으로 교회와 신학교의 상호 보완 내지 관련성을 확인시켰다. 이 두 신학자의 주장이 이곳 Misi´on Andes 초기사역의 기조를 이루게 하였고 교회같은 신학교, 신학교 같은 교회를 세우는 데에 따르는 신학적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는 실천신학으로의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복음서의 대부분은 제자훈련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가득차 있다. 또 12제자들과 같은 전임 사역자(목회자)훈련도 있지만 70인과 같은 파트타임 사역자들도 있어서 오늘날과 같이 평신도들도 받은 달란트와 숙련된 기능에 따른 훈련과정을 밟아 전 세계에 흩어져 사역을 감당함으로 복음전파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으셨다.
12제자들처럼 24시간 주님과 함께하는 전문인 사역자로서의 훈련과정은 없었으나 70인들이 주님의 파송을 받아 전도여행(단기선교)을 마치고 돌아온 후, 기대이상의 흡족한 사역보고(눅10:17)를 주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선교훈련과 선교학이 중심이 된 실천신학의 중요성을 제자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도록 시도한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가르침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선교현장의 신학교육은, 아무래도 실천신학쪽으로 더 발전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 연구는 신학교 커리큘럼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더프(Alexander Duff)의 권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선교학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느 지역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가르치는 학문이다. 선교는 비기독교인(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와 동행하시어 가슴에 불을 붙치고 눈을 뜨게 하셨던(눅 24:27,32)일들이 우리의 사역지에서, 신학교에서 재현되어 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주님 따라 다른 동네(눅4:43), 다른 양들(요10:16)에게로 향하는 자국인 선교사들의 힘찬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선지자와 교사들로 조직된 안디옥교회(행13:1~3)는 분명 신학교 같은 교회, 교회 같은 신학교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음에 주의해야 한다.

신학교같은 교회
교회는 반드시 사명자 내지 지도자들을 배출해야 교회이다. 또한 교회는 그 배출된 사명자들로 하여금 '영혼구원'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회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 큰 사역을 위해 '내 교회'(마태 16:18)를 세우셨다. 교회가 이 사역을 수행하는 한, 망하지 않는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그 주인은 설계 하셨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제자입니까'의 저자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스 목사가 제시한 공장교회(factory church)는 자체내에서 사역자를 조달하는 교회, 곧 성도들 가운데서 사역자를 배출해 내는 '신학교화한 교회'로, 개신교 환경이 열악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안성마춤형의 교회임에 틀림없다. 안디옥교회는 선지자와 교사들로 단합하여 선교화 된 초기 기독교회사의 신학교같은 교회의 모체교회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초대교회의 7집사같은 분들은 오늘날의 목사들보다 더 탁월한 점이 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신학교가 없었다. 교회가 신학교의 역활을 다 하였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는 사도들의 가르침(행2:42)이 있었고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은 밖으로 나아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바로 신학교같은 교회이다.  

끝맺는 말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사람을 쓰시고, 사람을 변화 시키신다. 모든 종류의 사역 속에 이 두 원리가 바르게 접속될 때 선교가 이루어짐을 경험했다. 만 14년을 빈민촌 사역에 헌신해 온 현지인 동역자도 있고 지금은 칠레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궁의 궁목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때 우리 부부에게 스페인어를 개인 교수해 준 동역자도 있다.
최근에 칠레, 페루, 볼리비아 3개국의 국경지역 도시인 페루의 따끄나(Tacna)에 자국인 선교사 양성을 위한 제2 훈련원(Escuela Misi´onero Internaci´onal)을 개원했다. 따끄나는 길이 8900km의 안데스 산맥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이웃나라 선교사 후보생들의 편리한 입국, 저렴한 물가 등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비전을 가진 놀라운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순수 혈통의 잉카 후예로 준비된 선교 헌신자이다. 옛 잉카제국이 흥왕했던 3개국 국경지역을 말씀으로 흥왕(행12:24)시킬 한국 교회의 동역자를 기다린다.
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과 준비 하시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늘 긴장하며 일하기를 원한다. 말씀을 배우는데서 진리를 찾고, 말씀을 가르치는데서 진리를 행하는 신학교같은 교회와 교회 같은 신학교에서 평형을 이루는 선교지를 가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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