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랑의 하나님은 굳이 선악과를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짓도록 만들었을까요?😅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한 사람이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께서 각자의 무거운 죄 짐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주님께 나오라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안 믿으니까 죄인이지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저는 하나도 무겁지 않은데요?”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죽은 시체 위에 아무리 무거운 쌀 가마니를 얹어 놓아 보십시오.
죽은 시체가 무겁다고 하지는 않지요..
마찬가지로 영혼이 죽으면 무거운 죄 짐을 지고도 무거운 줄 모릅니다.
그러니 회개하지 않으면 않됩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보실 때는 모두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으로 보십니다.
[에베소서 2: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처칠은 한참 전쟁의 막바지에서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알렉산더 프래밍이라는 의학박사가 페니실린을 발명하여 처칠은 살아날 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신문 기자들은 알렉산더 프래밍을 찾아가 과학자로서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프래밍은 “내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안 것이고,
이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아 구원을 주셨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
이것보다 더 위대한 진리와 놀라운 발견이 어디 있겠습니까?
죄에 대하여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감각하거나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열심히 성실히 살고 있는 자신을 자꾸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거북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은 굳이 선악과를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짓도록 만들었을까요?
어느 날 바위가 계란에게
“계란아~ 나한테 덤비지 마라.
나에게 부딪히면 너는 죽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계란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왜 바위가 자신보고 덤비지 말라고 하는지.. 지가 뭔데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계란은 뜻을 정해 바위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계란은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위가 화가 나서 또는 일부러 계란을 부순 것이 아닙니다.
계란이 바위에게 덤빌 때 그 자체가 파멸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며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영적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 박차 버리면 이는 우리 인간 스스로가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로 시작합니다.
그분이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양과 지구, 자연, 동식물, ..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인간을 만물의 으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파멸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시고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일종의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만약 기준으로 '태양을 만지지 말라'는 것을 정했다면 이것은 오직 순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됩니다.
겉으로는 자유를 준 듯하지만 실제로는 복종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너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된다’라고 헸다면 이 명령은 지킬수 없는 명령이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을 수 있다는 전제를 해놓고,
한 나무 실과만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엄마 손을 꼭 붙잡아야 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면 정녕 죽는다.
영생할 수가 없다”
이 말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하나님이 화가 나서 우리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란이 바위에게 덤볐다가 파멸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파멸을 초래한다는 뜻입니다.
왜 인간을 죄인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러기에 실수를 합니다.
성경은 아버지의 품을 떠난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세요.
우리에게는 욕심이 있고 시기심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왠지 배가 아픕니다.
함께 고시 공부하던 친구는 합격을 했는데 난 떨어졌다면..
친구의 합격을 기뻐해야 하는데 기쁘지 않은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친구들간의 배신, 부부의 문제,
고부간의 갈등, 자기 연민, 자기 혐오,
삶의 무목적성, 고독감, 성적인 문제,
거짓말, 비난 비판, 불평 불만…. 등
이 모든 악한 것이 사람의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힙니다.
물론 선한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모순 덩어리입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은 천국을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정했나요?
그것은 사람이 정한 것이요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구원받으려고 노력해도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고, 근본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광산의 지하 갱도에 갇힌 광부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저히 구조될 수 없고 구조대원의 힘이 아니고는 절대로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조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된 인간이 설수가 없기에 죄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백하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 제물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죄 해결 방법이 아니고는 사람은 결코 죄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당신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교회 나가는 악한 사람과 교회 나가지 않는 선한 사람 중 누가 구원을 받겠는가?"
라는 질문은 기독교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인간은 악하고 상대적인 관점에서만 선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나쁜 사람을 가만히 놔 두실까요?
이 말은 하나님은 왜 나를 가만히 놔두실까로 질문하면 납득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상대적인 비교로 따지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으로 본다면 나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만 구원 받는다면 우리 중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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