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반드시 온다
합2:1-4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 지를 기다려 보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 역사의 격변기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촛불 하나를 밝혀놓고 우리 가운데 깃든 어둠이 물러가기를 소망합니다. 대림절은 지금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우리 내면에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모시는 절기입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속에 있는 허섭스레기들을 치워야 합니다. 미움, 시기, 다툼, 허영심과 애써 결별해야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지금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갈등과 어둠이 깊어가는 시대이기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그리움은 날로 깊어만 갑니다. 주님은 언제든 우리 곁에 다가오고 계십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45>는 그분의 오심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그는 오십니다, 오십니다, 늘 오십니다.
순간마다 해마다, 날마다 밤마다, 그는 오십니다, 오십니다, 늘 오십니다.
숱한 노래를 마음의 숱한 느낌에 따라 불러 왔지만 그 모든 가락이 언제나 부르짖었던 것은 '그는 오십니다, 오십니다, 늘 오십니다.'
햇빛 밝은 사월의 향긋한 날엔 숲속 오솔길로 그는 오십니다, 오십니다, 늘 오십니다.
칠월 밤의 비 오는 어둠 속엔 천둥 치는 구름 마차를 타고 그는 오십니다, 오십니다, 늘 오십니다.
슬픔에 잇따른 슬픔 속에 내 가슴을 밟는 것은 그의 발자국, 내 기쁨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발이 밟는 황금의 촉감입니다."
(타고르, <기탄잘리>, 김병익 옮김, 민음사, 1999년 10월 10일, p.40)
주전 7세기의 예언자 하박국은 기다림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시대는 역사적 격변기였습니다. 주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바빌로니아와 메데아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후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은 힘의 공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리아는 무너졌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그들에까지 손을 뻗치기에는 힘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때 오랜 동안 아시리아에 눌려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채 절치부심하던 애굽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전 605년 경 옛 강대국 애굽과 신흥 강대국 바빌로니아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도시인 갈그미스에서 맞붙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바빌로니아는 애굽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자기들의 통제하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그미스 전투는 남왕국 유다의 운명을 바꾼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렸던 옛 영화를 회복할 왕으로 칭송받으며 민중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었던 요시야 임금이 애굽 왕 느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나갔던 므깃도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박국의 활동 시기는 바로 그 무렵입니다.
• 하나님의 정의를 묻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왜 세상의 불의를 벌하시지 않고 방관하느냐는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박국이 살던 시기의 유대 사회는 철저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불의, 약탈과 폭력, 다툼과 시비가 그치지 않았고, 율법은 해이해지고 공의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이 의인들을 협박하고 정의는 무너졌습니다(1:2-4).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갈대아 사람들을 채찍 삼아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퉁거리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백성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기로서니 그들보다 더 악하고 무도한 나라, 자기들의 힘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를 들어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는 분이,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왜 그냥 두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답을 들으려고 초소에 올라갑니다. 비장한 결단입니다. 답을 듣지 못하면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의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당신이 보여주는 묵시를 기록하여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묵시는 한 마디로 '끝이 곧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그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물론 힘을 신처럼 숭상하는 나라의 멸망입니다. 지금은 비록 그들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들이 기고만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제사를 위해 준비된 제물처럼 희생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는 출산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무리하게 앞당길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2:3b)
• 의인과 믿음
공의를 굽게 하는 자, 폭력을 앞세우는 자, 의인을 억압하는 자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날을 받아놓은 제물 같은 신세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을 마음 아파하면서 낙심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러나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억압에서 자유로 이끄십니다. 가나안에 이르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해야 했지만, 그 광야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학교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맥없이 주저앉거나 불퉁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척박한 땅에 생명과 평화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몫을 온전히 누리는 세상을 향한 진군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금과옥조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어 '에무나'의 번역어입니다. 이 말은 신실함 혹은 성실함이라고 새길 수도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불이익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죽임의 문화가 번성하는 곳에서 살림의 문화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몸을 굽혀 지상의 권력을 섬길 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기 위해 헌신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예의 시간입니다.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느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때문에 이웃들의 곤경을 외면하고 살아온 삶을 회개하도록 주어진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3:8-9)
기다림이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약한 자들의 벗이 되어주고, 마음이 찢긴 이들을 온전하게 회복시키고, 살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을 격려하여 일어서게 해야 합니다. 대림절기는 바로 그런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도래하고 계시는 주님은 당신의 몸이 되어 드릴 이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아름다운 초대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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