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적 은총
호세아는 하나님을 ‘고아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제유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회의 주변인들, 그러니까 주류 사회에 의해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처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분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율법 전체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으로 요약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이들에게 무관심합니다.
그들과 연루되기를 꺼립니다. 연루되는 순간 일상의 평온이 깨지고, 불편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공포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그런 이들 사이로 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을 외면하면서 하나님께 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아무리 찬송을 불러 보아도, 철야기도와 금식기도에 열중해도 소용 없습니다.
어거스틴 성인은 ‘진리를 피하면서 찾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 데, 우리도 그런 것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는 사람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상황에 내몰린 이들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잠언은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더해 "궁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공경하는 것"(잠14:31)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설 땅이 되어 주려 노력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의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는 것, 곧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호10:12)은
그분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호세아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겠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이제는 다 풀렸다."(4)
우리는 이 말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주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마9:12)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들을 기꺼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이 오늘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쳤으면서도 우리가 희망을 갖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사랑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누릴 큰 은혜입니다.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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