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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WCC의 정체는 무엇인가?

천국생활 2012. 6. 6. 12:56

W.C.C 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 기독교계내에서 W.C.C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리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들은 W.C.C 가 교회를 연합시키는 좋은 것이라 평하나

또 다른 어떤 분들은 W.C.C 란 교회연합을 가장한 사탄의 앞잡이라 평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말이 맞는 말일까요?

 

훌륭한 야구선수이지만 모든 구기종목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한 분야에서는 크게 두각을 드러낼 수 있지만,

또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훌륭한 목회자로 귀중한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 있지만,

W.C.C.의 정체를 파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구를 잘한다는 이유로

야구선수를 축구시합에 출전시키고

야구를 잘 하니 축구도 잘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이 될 것입니다.

작금의 교계에서 훌륭한 사역들을 감당하고 계시고

그분들 자체는 귀중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지만

W.C.C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W.C.C에 대하여 잘못된 판단을 함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W.C.C를 좋은 것으로 추천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불일듯 일어납니다.

 

최근에 한국기독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나타내시는 몇몇분들이

W.C.C를 적극 옹호하며 나서는 것을 봅니다.

그분들이 훌륭하신 목회자들임에 틀림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W.C.C에 관한 한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것만큼은 전문학자들의 연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들은

W.C.C에 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들이 발표한 내용들입니다.

잘 참고하시고 올바른 판단에 도움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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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정체

[김학유 교수, 합신 선교신학]

 

1948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한 WCC는 세계교회의 통일을 부르짖으며 지난 육십여 년 동안 다양한 교회 통일 운동을 펼쳐왔다. WCC는 연합(unity), 대화(dialogue), 구원(salvation),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인간화(humanization)등과 같은 매우 매력적인 신학적 용어들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교회들을 유혹해 왔다. WCC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terms)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건전하고 정통적인 것(orthodoxy)처럼 보이지만 그 용어들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실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WCC의 선교 신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기독교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WCC가 지닌 중요한 신학적, 선교학적 위험성을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

 

첫 번째로 WCC의 성경관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WCC는 성경의 권위(authority)와 무오류성(inerrancy)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1971년 벨지움의 루뱅 대학(University of Louvain)에서 결정된 문헌을 보면 WCC가 더 이상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은 그들의 신학적 작업은 다양한 오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신학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 신학에 있어서도 당연히 오류를 만들어 낸다. WCC가 사용해 온 신학적 용어가 지닌 의미가 전통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WCC의 선교 개념은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전혀 다른 선교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1952년 독일의 빌링겐(Willingen) 대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선교 개념은 전통적인 선교 개념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교회 중심의 선교”(Church-centered mission)가 아닌 “선교 중심의 교회”(mission-centered Church)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동참하는 것이 참다운 선교라고 주장한다. 이 때부터 영혼 구원에 우선권을 두었던 전통적인 선교 개념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1952년 이후로 WCC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현장에 참여할 것과, 사회 개혁과 변혁의 주체가 될 것을 주문하였다.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선교 개념 속에서 영혼(soul)과 영원(eternity)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영혼과 영원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물리적인(physical) 것들과 현세적인(here and now) 것들 즉, 정치, 경제, 사회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WCC는 지금도 세계 교회들을 향해 정치적 압제와 억압,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 사회적 불의와 불공정 등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사역들이 곧 선교이기 때문이다.

 

셋째, WCC는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내지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를 지지하고 있다.

 

WCC는 타 종교와 함께 진리를 공동으로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타 종교에 담겨있는 부분적인 진리를 수용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WCC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더 이상 타종교 권역에 파송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소위 “선교사 파송금지”(missionary moratorium)를 선언함으로서 타 종교들 안에 구원이 존재함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타 종교에 대한 공격을 금지시키고, 타 종교와 함께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야할 것을 강조 한다. Hendrik Kraemer가 지적한 것처럼 WCC는 “신학적 절충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WCC 대회는 한국 교회가 지리멸렬해가는 WCC 운동에 혈액과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들 속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WCC에게 다시 한 번 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신학적 미사여구에 속아 교회의 진정한 선교적 사명과 연합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선교의 우선권은 영혼구원에 있고, 사회 변화와 개혁은 개인의 영적변화로 말미암은 열매로 나타나야한다. 한국 교회는 “Missio Dei”에 담겨있는 신학적, 선교학적 위험성을 직시하고 올바른 성경적 선교 개념을 추구해야 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행 4:12, 요 14:6)라는 말씀을 붙들고, WCC가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나 혼합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신학적 일치 없는 조직적인 연합(organizational unity)은 진정한 연합이 아니다. 비록 조직적인 연합이 없을찌라도 신학적 내용이 일치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인 것이다.

 

합신은 말한다 (20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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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교회연합운동, 적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이어져
배도한 카톨릭과 손잡은 WCC가 종교연합으로 적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 성도들의 피를 취할 것이다
2011년 11월 25일 (금) 09:32:00 유니온뉴스 webmaster@cun.or.kr

한국교회는 WCC를 앞세운 종교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배후에서 활동하는 사단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단의 악한 계획은 만저 주의 종들을 넘어뜨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참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세속주의에 몰든 거짓선지자들의 단체가 바로 종교연합운동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종교연합을 주장하는 세속적인 교회, 인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마지막 때에 주의 종으로 행세하는 거짓선지자들이 많은 성도들에게 쑥물을 먹여 죽게할 것이다.

교회에서 버젓이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의 종교예식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이것을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구실로, 사단의 우상숭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고 있다.  

결국 종교연합운동은 이세상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종교들을 기독교회가 인정하여 존중하게 만들어, 우상숭배의 앞잡이가 되게 할 것이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거짓선지자들이 수많은 영혼들을 짐승에게 넘겨주어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서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 18:4) 

이제, 한국교회는 거짓선지자 무리에 동참하지 말고, 외로운 신앙의 결단을 해야 할 마지막 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때에 거짓선지자들은 적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 성도들의 피를 요구할 것이며. 그 피에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WCC를 반대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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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충격적인 실체를 알리는 아티클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란 세계의 기독교 교파 간의 연합기구를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의 명의로 W.C.C.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N.C.C.K.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구세군 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까지 8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비록 교단 차원으로 가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8개의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 역시 W.C.C.에 대한 태도는 찬성과 반대로 확연하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종교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W.C.C.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W.C.C.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W.C.C.를 반대하는 목회자들은 “옳은 것이 좋은 거다.”라는 신앙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관용을 빙자한 ‘타협’과 편협이라는 누명을 각오한 ‘절개’의 차이입니다.


   물론 타협을 거부하는 목회자들의 다수도 W.C.C.에 얼떨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W.C.C.의 정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두 권의 책부터 소개합니다. 먼저 소개할 책은 『W.C.C. 운동 비판』(박영호/기독교문서선교회)입니다. 이 책에서는 W.C.C.가 어째서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교회들의 연합기구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W.C.C.의 신학적 기반은 종교다원주의이며, W.C.C.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교회통합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의 통합입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역시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실제로 W.C.C.는 무속종교와 아프리카의 토착종교, 마녀들의 마술과 점성술,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하고 있습니다. W.C.C.는 무당의 푸닥거리조차 성령의 역사로 보며 영지주의를 정당한 기독교로 승인합니다.


   W.C.C.는 선교를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구원의 사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복지 증진과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 등을 선교의 목표로 상정합니다. W.C.C.는 이웃 사랑을 우상화하여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 앞세웁니다. W.C.C.는 하나님께서 가증한 죄악이라고 정죄하신 동성애를 오히려 지지합니다. 인권을 빙자한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척하고 하나님을 가르치려 들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런 일을 합리화하려면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W.C.C.는 역사비평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의도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 역시 W.C.C.의 위험성과 그 실체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W.C.C.가 얼마나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 신학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며 실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일치와 진리 안에서만 연합운동의 정당성이 성립됨을 역설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W.C.C.의 총회는 실로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탈기독교화 되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의 세계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교협의체로 출범한 W.C.C.는 시간이 갈수록 복음전도를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습니다. 하지만 웁살라 총회(1968년)부터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과제로 천명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복음전도에 따른 영혼구원은 뒷전이며 생태, 환경, 복지 등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쟁점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나이로비 총회(제4차, 1975)부터는 본격적으로 혼합주의의 경향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에서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습니다. 이 총회의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웠으며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바아르 선언문을 통해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습니다.


   괄라룸플 대회(1990)에서는 성령님께서 온 세상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나 이는 성령님의 편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대회에서 성령은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인격성을 부인하고 단지 하나의 능력 정도로 치부하는 이런 관점은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적인 교리이기도 합니다.


   이듬해에 열린 캔버라 총회(1991)에서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 대표자들까지 초청했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여”라는 주제로 회집된 캔버라 총회에는 약 2,000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죽은 영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초혼제로 시작되었으며, W.C.C.는 이를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으로 평가했습니다. 경악스럽게도 이 초혼제를 집행한 장본인이 한국의 정현경 교수였습니다.


  그 당시, 정현경 교수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소지를 불태운 뒤 그 재를 하늘로 뿌리며 초혼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원혼의 음성을 못 들으면, 성령의 음성도 못 듣는다고 주장했고, 한 맺힌 영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떠돌아다닌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명백한 이단사설로 규정된 ‘귀신론’의 내용과 진배없습니다. 조금의 흠집만 있어도 정죄를 못해서 안달인 이단사냥꾼들은 어째서 여기에 대해서는 잠잠한 것입니까? 게다가 정현경 교수는 단순히 이단사설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체 총대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대에 오른 정현경은 강연을 종교적 퍼포먼스로 진행했습니다. 일단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호주 한인교회의 청년들을 동원하여 토속 춤을 추게 했습니다. 연이어, 객석의 불이 꺼지고 호주 원주민 악사가 무대에 등장해 전통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원주민 무용수가 나와 땅을 축복하는 춤을 추었고, 한국인 풍물패가 나와 징과 괭과리를 치면서 굿판을 벌였습니다. 그런 다음, 초혼제 제단을 만들고 상, 촛대, 향, 초혼문 등을 무대 중앙에 놓았습니다.


   세팅이 완료되자, 정현경 교수는 상복을 연상케 하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창호지에 쓴 영문 초혼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맺힌 영들과 피조물들의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한 맺힌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정현경의 초혼문 원고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 받은 검둥이 여종,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 왕의 욕정 때문에 다윗에 의하여 전쟁터로 보내져 죽임을 당한 충성스런 군인,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전쟁에서 승리 한다면, 자신을 마중 나온 첫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아버지 입다의 믿음의 희생물이 된 그의 딸의 영이여.”


   이를 시작하여 정현경 교수는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 다르크의 영, 미녀사냥으로 화형당한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 식민주의 시대에 학살당한 토착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접신의 사술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단사설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적인 언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에서는 이에 대해 극찬하며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과연 이런 내막을 알고서도 W.C.C.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를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방금 소개한 두 권의 책 이외에도 예총총회 총회신학원의 논문자료인 《W.C.C. 및 W.E.A.에 관하여, G.C.F.란 무엇인가?》 역시 W.C.C.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이하에서는 이 자료의 내용을 요약 ? 발췌해보았습니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합니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뭐든지 잘만 믿으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기 때문에 구태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천주교(로마가톨릭, Roman Catholic)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결정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불교나 원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와 함께 의식도 진행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W.C.C.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자유, 공전, 평화, 환경, 인권, 화합 등의 듣기는 좋지만 애매모호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정통 기독교에 반하는 反성경, 反기독, 反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선교 무용론 등을 내세우고 있는 W.C.C.는 실로 기독교라는 이름의 정치적인 탈을 쓰고 있는 반기독교 세력입니다. W.C.C.는 심지어 이단사설이라고 불러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그리스도적인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W.C.C.의 신론과 기독론은 ‘종교다원주의’이고, W.C.C.의 성령론은 ‘종교혼합주의’입니다. 또한 W.C.C.는 영혼구원이 없는 사회구원만 말하고, W.C.C.는 선교무용론에 따라 선교사 철수령을 내렸으며, 성경은 단지 해방신학의 도구로 남용할 뿐입니다. W.C.C.는 천주교와도 적극적인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주장하는 교황의 절대무오설이나 마리아 승천설 등도 모두 인정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개신교를 연합시킨 다음 종교개혁 이후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천주교 속으로 함몰시키고자 합니다.

 

 

출처 :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글쓴이 : 이병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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