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여전히 생명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입니다.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만한 삶을 돌아보았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불편한 삶을 감수했습니다.
일본 사회는 이제 ‘절전’에 민감한 사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진 대재앙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를 과잉 소비하는 사회에서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지는 현실입니다.
김광규 시인은 <화산이 많은 나라>라는 시에서 평범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유황열탕 수증기 뿜어대는 호수 주변에/신경통 위장병 류머티즘 부인병 피부병에 좋다는/노천 욕장 만들어놓고/98℃ 온천수에 계란을 삶아서 판다”. 유황연기 뿜어대는 고원 지대에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고, 가파른 산비탈과 아찔한 대협곡을 가로지르는 로프웨이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만년설이 쌓인 정상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시인은 언제 다시 폭발할 줄 모르는 휴화산을 밑천으로 아슬아슬하게 시간의 돈을 버는 나라를 보며 아뜩함을 느낍니다.
그러고는 부글부글 지하수가 끓어올라 넘칠락말락 뜨끈뜨끈한 바위를 골라 밟으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원숭이 떼 없어도 좋다면서
시를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보여줄 것 없어서 마음 놓고/가난하게 살 수 있는 곳/그립다 화산이 없는 나라”
특정한 나라를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활화산 위에 집을 짓고, ‘더 많이, 더 크게, 더 편리하게’를 외치며 사는 동안
세상은 훨씬 위태로운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더’의 길은 언제나 이웃을 배제하고 홀로 행복하려는 길입니다.
그것은 반신앙의 길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입니다.
이제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덜’의 길입니다.
뒤에 오는 다른 이들을 위해 좀 남겨놓을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마음입니다.
‘덜’의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입니다.
얼마 전 T.V를 통해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들의 생태를 보았습니다.
감동적이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펭귄들이 수행하는 생존의 전략인
‘펭귄 허들링’(penguin huddling)이었습니다.
펭귄들은 서로 몸을 밀착시킴으로 찬바람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안에 있는 펭귄들이 바깥으로 나가고 바깥에 있던 펭귄들이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도록 했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신앙공동체란 바로 저런 것이겠다 싶었습니다.
극한의 이기심을 버리고 기꺼이 자신이 바람막이가 되기 위해 바깥에 서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훈훈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정말 우리 삶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왜 살아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더’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 ‘덜’의 길로 접어들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옷자락을 보게 됩니다.
사순절은 그런 삶을 연습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의 삶이 한결 단출하면서도 든든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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