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딸, 민아가 있었고, 그 딸로 인해 그의 영혼의 갈증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의 고백은 그의 심각했던 저항은 결국 좋아하기에,아니 떠날 수 없기에, 그래서 이제 그 앞에 와 울음을 터트리는 어린아이같은 연약한 무신론자의 기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영성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문지방의 단계에 와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할수 있는 것과 할수 없는 것, 알수 있는 것과 알수 없는 것,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갈등을 해왔던 그이기에 자신의 지성을 뛰어넘고자하는 그의 모습은 더 체감적으로 다가온다.
1.
세상속에서 나은 무엇을 얻기위한 종교적 술수대신,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어깨에 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자리를 갈구하고 있었다. 어느새 가득찬 방을 보며 그 방을 또 다른 무엇으로 채우는대신 비우기위해 그는 영원의 갈구를 하고 있었다.
2.
메멘토 Memento 는 라틴말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리 Mori 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혼자서 대낮 보리밭 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돌부리에 채인 것도 아닙니다. 귀가 멍멍하도록 고요한 대낮, 새하얀 햇빛 한 복판에 서서 아무 이유 없이 뺨을 타고 내리던 눈물방울을 느꼈지요. (p.35)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죽는다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말끝마다 좋아죽겠다고 하고 슬퍼죽겠다고 하고 우스워죽겠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배고파죽겠다고 하고 배가 부르면 이번에는 배불러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런 동족들이 싫었고 부끄러웠지요. 하지만 죽음은 삶의 극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메멘토 모리라는 것을 알았지요.
살기죽기라고 하지 않고 죽기살기라고 말하는 사람들, To be or not to be 햄릿 대사도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라고 번역하는 사람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인이야말로 메멘토 모리의 철학적 종교적 민족이 아니겠는가.
다만 라틴어로 말하면 의미 심각한 철학적 말이요 종교적 잠언으로 들리고 한국말로 좋아죽겠다고 하면 속된 생각, 부정적 의미로 생각해 온 것이 우리의 과오였던 것이지요.
...감동적인 순간 최고의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순간. 한숫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인다 죽여준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때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짜리의 종교적 충동을(p.37)
3.
그러니까 아버지의 기도는 언제나 우리와 가장 먼 나라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셨던 것이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으신 외신 뉴스가운데 보스니아처럼 전쟁을 하거나 아프리카처럼 기근으로 굶어죽어가는 어린이들이나 우리는 관심조차 갖지 않은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이나 홍수로 가족을 잃은 난민들을 보살펴 주시라는 기도였던 것이지요.
그 긴 기도의 끝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국과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셨는데 그것도 아주 작고 멋쩍은 소리로 혹시 남은 복이 있으시면 우리 식구들, 어린 손자들에게도 좀 나눠 줍시사라고 끝을 맺으십니다.(p.41)
4.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합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p.152)
오히려 그는 아버지의 기도 속에서, 고통중에 있는 딸이 신앙으로 웃는것을 보며, 어린 시절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의 눈물을 기억해 낸 것이다. 진정한 기적은 암이 나은 것이 아니라, 눈이 뜬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그의 고백은 교회에 가슴 아픈 깨우침을 준다.
5.
교회 바깥에 나가보면 이런 여우들이 많습니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기름진 얼굴을 하고,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하고 있는데, 속으로 울고 있어요. 그 사장 자리가, 그 장관 자리가, 세상이 이런 줄 알았으면 누가 했겠냐. 그런데 아무개 아들이 회장, 장관 아들이라 그러니까 참는거죠. 그렇게 계속 맛있는 것처럼신포도를 따먹고 속은 위궤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 현대인의 이솝 우화지요.(p.236)
누구나 다 가는 길이기에 그리 간다. 누구나 다 부러워 하는 길이기에 벗어나지도 못한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모두가 실패라고 부르기에 사람들은 속을 상하게 하는 신포도를 먹으면서
중단하지 못한다. 거기서 단절을 경험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신앙이라는 첫번째 문턱을 넘는 것이리라,
지성을 넘어 영성을 바라 보아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습성의 덫조차 벗어나지 못했다면,
정말 위궤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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