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목사-구약의 예수그리스도

아가서가 노래하는 그리스도

천국생활 2010. 2. 17. 15:41

여러분! 아가서에서 그리스도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이나 구세주나 어린 양이나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지 아니하고 신부를 대하는 신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신령한 시문학의 형태로 신랑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1.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
그리스도가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아가서에는 신랑이 신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노래가 많이 있습니다마는 오늘은 아가서 4장 7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여기에서 신랑은 ‘나의 누이야 나의 신부야’라고 불렀습니다. 신부를 나의 누이라고 부른 것은 신부가 소녀와 같이 천진 순결하여서 자기 누이처럼 느껴지는 감정으로 부른 것이고, 또 나의 신부라고 한것은 이제 그 소녀가 아름답게 성장하여서 신부로 사랑을 받을 만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도 하고 아내라고도 하면서 사랑하였습니다. 마가복음 3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흠없고 순진한 신부
8절과 9절에 보면 “너는 완전히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고 사랑스러워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는 너무도 순진하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워서 신랑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이 빼앗았다는 동사는 정복한다, 사로잡는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같은 뜻으로 신부의 흠없고 아름답고 순진한 모습은 완전히 신랑의 마음을 빼앗고 정복하고 사로잡았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신랑되시는 주님은 신부인 우리 성도,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마음, 자기의 사랑, 자기의 생명을 다 내어주시고 쏟아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되 마음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사랑과 또한 생명까지도 다 주셨습니다(마 20:28).
(3) 감추인 신부
여기 4장 12절에 보면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라고 말하였습니다. 잠근 동산이라고 하는 말은 누구나 출입하지 못하도록 잠가두고 꼭 필요한 사람만 출입하는 동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덮은 우물이라고 한 것은 우물뚜경을 덮어두어서 바람에 먼지나 나뭇잎이 날아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또 지나가는 사람이 마음대로 물을 길어가지 못하도록 물을 깨끗하게 간수하여 두었다가 꼭 그 주인이 사용할 때에만 뚜껑을 여는 이러한 우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봉한 샘이라고 한 것도 샘물을 잘 봉하여 두어서 필요한 사람에게만 그 물을 마시도록 하는 샘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이렇게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고 하였는데 이와같이 신부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아니하고 오직 신랑 앞에만 그 정절과 사랑과 봉사를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다 주고 사랑을 다주고 봉사를 다 한다고 하면 그 신부는 열어놓은 동산, 열어놓은 우물, 열어놓은 샘이지 결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성도는 다른 무엇에 마음을 주거나 정신이 팔리거나 사랑을 하거나 충성을 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신랑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그에게만 육신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재물도 바치고 재능도 바치고 지식도 바치고 시간도 바치는 그러한 신자는 훌륭한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너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렇게 인정하여 주실 것입니다.


 

2. 신부의 사랑을 받는 신랑
그리스도는 신부의 사랑을 받는 신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 2장 3절에서 6절까지에 보면 신부가 신랑을 노래하는 말이 나옵니다.
(1) 열매 맺는 신랑
신부는 신랑에게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잡목 수풀 혹은 앨매를 맺는다고해도 먹을 수 없는 나쁜 열매만 맺는 수풀 가운데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와 같이 나의 신랑은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많고 많아도,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십니다. 그런고로 사과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중의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2) 단 맛을 내는 신랑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라고 말하였습니다. 신랑이 주는 사과나무 과실을 먹으니 이렇게 그 맛이 신부의 입에 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참 달게 우리 귀에 들려집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도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라고 노래하였고, 잠언 25장 11절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3) 잔치집으로 인도한 신랑
2장 24절에는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갔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잔치집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신랑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데리고 잔치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신랑을 따라서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는 행복합니다. 신부를 데리고 잔치에 들어가는 신랑은 기쁩니다. 그런고로 우리도 신랑을 따라서 영광스러운 잔치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3. 하나가 된 신랑 신부
신랑과 신부는 이제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된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2장 16절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고 하였는데 6장 3절에 보면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속하였구나.”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신랑과 신부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너는 내 것이요. 나는 네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결국 너와 나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주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뜻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고, 또 요한복음 17장 21절에는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주 안에 계셔서 두분이 하나되신 것과 같이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 안에 있어서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것이요 우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아가서에는 그리스도가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고, 또 신랑을 맞는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신랑과 신부가 연합하여 하나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교회의 신랑이시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또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하나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