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혜의 근원
8장 22절과 24절 25절에 보면 지혜가 말하기를 태초에 여호와께서 일하시기도 전에 나를 가지셨고 나를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자 하나님께서 지혜가 되셔서 자기 자신의 근본 본질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 성자의 초영원성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초영원성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 태초에 천지 만물을 짓기도 전에 벌써 지혜, 즉 성자 하나님을 가지고 낳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지혜는 태초보다 더 전에 하나님께서 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자 하나님은 태초 이전에 전태초적으로 영원보다 더 이전에 초영원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전태초, 초영원이라는 말은 성자 하나님이 계시기 시작하신 때가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나셨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러한 용어를 씁니다마는 성자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시간적 존재는 아니시고 무시무종,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초시간적 존재이십니다.
(2)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낳으셨습니다.(잠 8:22, 24, 25) 골로새서 1장 15절 16절에 보면 “성자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낳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는 피조물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과 영광과 권세와 능력이 동등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3) 삼위일체의 관계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말씀드렸으니 한가지 더 성부 성자 성령과의 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 분이십니다. 성령은 성부 성자가 낳으신 분이 아니시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 분이십니다.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다고 하는 그러한 의미에서 나오신 분이십니다.
이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존재하시는 그 양식을 말씀드리면 성부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낳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혜로운 말씀
지혜, 즉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거기 계시고 그 옆에 계시면서 창조자가 되셔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데 동참하셨습니다. 여기 잠언 8장 27절과 30절에 보면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으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이렇게 하였다는 말은 성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장에는 성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동참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잠언 8장에는 이와 같이 성자 하나님께서 지혜가 되셔서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으나,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성자 하나님께서 말씀이 되어서 창조 사역에 동참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와 말씀이 다같이 성자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방법은 말씀과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지혜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말씀의 지혜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다고 해도 좋고 또 지혜로우신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또, 이 말씀과 지혜는 말씀과 지혜만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 곧 신약의 주님께서 말씀과 지혜로 나타나셔서 역사하신 것이었습니다.
3. 지혜로운 행동
잠언 8장 17절에 보면 지혜가 말하기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받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지혜로 나타나신 성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혜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혜를 사랑해야 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지혜의 반대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솔로몬왕은 지혜있는 사람이 되기 원하여서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부와 권세도 아울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지혜롭게 말씀하시고 또 지혜롭게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지혜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지혜롭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묻기를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곤란한 문제였습니다. 만일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라고 하면 그 당시의 애국적인 유대인의 감정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로마 나라에 협력하라고 하는 것이니 비애국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지 말라고 한다고 하면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의 통치를 반대하라는 말이 되는 것이니 이렇게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하시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할 말이 없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예는 또 유대인들이 현장에서 범죄하던 여인들 데리고 와서 이 여자를 돌로 치랍니까? 치지 말랍니까? 하던 질문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타 여러가지 질문에서도 지혜롭게 대답하시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보통사람으로서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지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지혜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주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서 지혜가 말하기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면 지혜의 사랑을 받는 것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고 또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잠언에서는 주님께서 지혜로 나타나 있습니다. 태초보다 더 이전에 지혜는 하나님께서부터 났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함께 있으면서 역사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또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되심,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되심,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것 등을 말하여 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혜로 오셨던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지혜이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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