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에서 언급했듯이 서구 선교학은 통계학과 인류학적인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선교 이론과 전략 개발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이러한 학문에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한 예로 10/40 창 선교를 위한 구호를 들 수 있다.
루이스 부시와 랄프 윈터 박사에 의해 주창된 개념인 10/40 창은 지구의 위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는 국가와 민족들이 가장 복음화 비율이 낮고 또 선교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0/40 창 개념은 이 전략적인 지역에 보다 많은 선교적 관심이 기울여져야 하고 보다 많은 선교사가 가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구호 역할을 했다.
이것은 시기 적절한 지적이었고 이로 인해 세계의 많은 선교 단체들이 이 선교 불모 지역들에 대해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구호의 강조는 그간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안전 지대에 머물며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던 태도에 대해 반성과 도전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호에 반응함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칫하면 선교를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최대 효용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선교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소명을 받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열심을 가진 선교 후보생이나 후원자, 또는 선교 단체나 교회가 자칫하면 공명심 때문에 남들이 가지 못하는 더 어려운 곳, 또는 더 많은 불신자들이 있는 곳을 채택하려고 고집하기 쉽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보다 어떤 곳이 더 많은 필요를 가지고 있는가에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전받기 쉽다. 그 땅에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가는 자신이 섬길 선교지를 고르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앞서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선교는 가난한 나라에 가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나 유럽 등지는 선교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 선진 지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들은 부러움이나 질시를 사는 경우조차 있었다. 이로 인해 선교 후원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물가 비싼 곳으로 가면서 후원도 모으기 어려워서 이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이중고를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이나 유럽은 현재 선교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 중의 하나이고 또한 중요한 선교 대상 지역이다. 이 지역의 복음화는 그 영향력 면에서 여타 제삼 세계 국가에서의 복음화보다 훨씬 강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국가로 파견되는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은 중요한 선교 자원이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한인 교회의 울타리에 머물며 신앙을 자신들의 그 지역 정착과 앞으로의 생활의 필요를 위한 도구로써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이 눈을 연다면 자신들이 선교지로 보내심을 받았고 또한 그 땅의 영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써 그들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교 대상지와 소명을 확인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 개인에게 문을 열어주시는 곳과 보내시는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어느 나라에 어떤 필요가 있는지의 정보를 구하는 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필요를 알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개입하심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우선 순위의 문제이지 각국의 선교 정보를 아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즉 실용성이나 필요가 우선 순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아는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서구 선교계는 이미 오랜 시간의 선교 경험을 쌓았다. 이미 많은 실수를 반복했고 그것에 대해서 반성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로 인해 오랜 세월을 거쳐 원칙과 매뉴얼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매뉴얼에 묶여서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가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양 선교사들은 하나의 작은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초 조사와 보고서 작성을 위해 수년이라는 세월을 보낸다. 그로 인해 실수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조심성 있고 안전하게 준비를 거쳐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서구 단체의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과정에서 적기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한편 경험 없는 한국 선교사는 좌충우돌하면서 일을 먼저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반응해 간다. 그 과정에서 서구 선교사가 생각지도 못할 큰 일들을 이루어 내곤 한다. 특히 몽골 선교에 있어서 수도인 울란바아타르에 세워진 교회의 절반이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은 바로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 선교사들에 비해 준비 단계가 아주 짧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역 방식이나 기질과 관계가 있다. 물론 준비 없이 사역에 뛰어드는 일이 꼭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의 상당 부분은 기초 조사와 오랜 시간의 준비를 통해 되어지기 보다는 선교사와 단체가 그 때 그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별히 한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최근에 선교 대학이 다수 설립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 선교 역사상 아주 독특한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선교는 근 50년간 성경 학교는 세웠을지언정 대학을 설립하지 않았다. 랄프 윈터 박사는 이것이 서구 선교가 가진 열 가지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대학은 성경 학교에 비해 세속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부담이 많기 때문에 서구 선교사들이나 단체가 원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특히 타 문화권에서 현지 정부의 감독을 받으며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계획을 세워서 이루어 갈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한국인에 의해서 선교지에 세워져서 운영되고 있는 대학들을 보면 미리 블루 프린트를 작성하고 펀드 레이징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면서 교원들을 모집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 모든 준비를 갖추고 시작한 예는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몽골 국제 대학교의 경우도 그저 창립자 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순종하며 걸음을 떼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몽골 국제 대학교가 걸어온 길은 수많은 예기치 않은 문제들 속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필자가 처음 몽골 국제 대학교를 접했을 때는 학교의 시작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준비를 위해 몇 년을 허송했다면 적기를 놓침으로 해서 결국 대학교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칫 우리가 아는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대 학문을 우리의 신앙과 접목시키는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교회 안에 세속 경영 이론이나 심리학적 이론을 적용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예가 증가한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놓치는 영역이 있다. 세속 학문의 기초는 인간을 주체로 놓는 인본주의 사상에 있다. 반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어서도 순종할 것과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반응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의 교회에서 목회자의 박사 학위 획득 여부가 유난히 관심을 끄는 경향이 있는데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