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음을 즐거워하였습니다.
현재는 그리스도를 본즉이 없으나 말할수없는 영광스러움으로 그를 즐거워합니다.
현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
육체의 문을 닫고 천국의 문을 여는 죽음을 통과하는 날
영원한 치유를 받으며
그 날로 부터
우리의 미래는 밝고 맑고 환한 변하지 아니하는
영광의 찬송을 부르며 찬란한 빛 가운데 즐거워할 것입니다.
현재는 이 영광의 찬송을 그림자같이 부를수있는
발생한 미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은혜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야곱이 사닥다리를 본 것같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절박한 순간에
주님을 붙잡고 밤을 샌 것같이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변화받는 순간에
해가 뜨 오름같이 그의 마음에 의식의 밝은 빛이 덮을 때
그가 변화된 언어와 행동을 사용하는 능력을 나타냄과 같이
그의 차원이 달라지며 그의 해석이 달라지는 것 같이
복음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노예로 고통당하면서도
섭리의 신비를 믿은 요셉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형제들을 용서할 수있었고
그는 믿음으로 반응하며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의 인생 고난의 역사를 해석하는 차원이 달라진 것같이
당신들보다 나를 하나님이 먼저 보내셨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큰 그림을 볼수없었지만 섭리를 보며
이긴 것 같이.....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다윗이 수많은 역경을 통과한 고난의 인생길이었지만
그는 노년에 고백하기를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의 뜻은 없고 자기의 생명도 다 내려놓고
자기의 돈도 건강도 자녀도 다 주께 드릴 수있었던 것도
아무리 힘이 있어도 기도로 순종하였던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성령님의 감동 주심따라
기도로 물어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싶은
드릴라의 충동도 이긴 것도
모두가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을 주의 종이라 칭하는 것도
솔로몬 자신도 주의 종이라고 칭하는 것도
왕가이지만 주의 종의 가문이라고 부른 것도
모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극한 고난가운데서도
환상을 보는 즐거움을 누린 것 같이
바울이 나를 위하여 면류관을 예비해두었다고
감옥에서도 무한한 즐거움에 사로잡힌 것도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도
모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삶의 여정은
십자가 있는 영광이었으며
그 숱한 위험과 아픔과 괴로움 속에서도
오히려 즐거워한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환난속에서 진정한 위로를 체험하고
혼란속에서 진정한 안정을 체험하며
현재의 삶을 왜라고 항의하지 않고 섭리에 적응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배려하고 현재 나타난 뜻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심하지 아니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충돌하지 아니하며
날마다 말씀 QT라는 의전회의를 통해
은총의 통로가 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이 복음의 능력을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합니다.
거룩과 빛과 소금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토기장이와 질그릇 ㅡ조지 휫필드 (0) | 2009.03.27 |
---|---|
나의 친구 주님은 내가 약할때 더 가까이 오심 (0) | 2009.03.19 |
교회를 위한 기도 (0) | 2009.03.09 |
의의 면류관을 주실것이니 (0) | 2009.01.10 |
어려운 올해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understand입니다 (0) | 200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