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연단을
장기간동안 체험한 것은 나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생활환경에서, 그리고 모친의 별세..... 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건강을 상실하게하였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욥의 연단에 가까운 아픔과 불면의 밤이었습니다.
카알힐티가 쓴 '잠못이루는 이밤을 위하여' 라는 옛날의 책을 다시 집어 읽어가면서
불면도 하나님이 생각해서 주시는 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욥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가지고 가신 자도 여호와이시므로 하나님께서 오히려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욥과 자신을 비교하기에 이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욥을 칭찬하신 것을 이해 할수가 있었습니다.
욥의 하나님께 고백한 것처럼 내가 전에는 아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는 은혜를 받게되었다는 그 말이 나의 것이 되게한 그런 복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저주받은 모습으로 달리신 가운데서도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버리고 간 제자들의 배신을 충분히 느낄수있었습니다.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큰 고통은 주님을 저주아래 놓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나의 아픔은 주님의 아픔에 비교한다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나의 고통은 주님의 고통에 비교한다면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알기 까지는 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주님이 피흘리시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껴 봅니다.
주님은 여전히 위로를 하시는 크신 분이십니다.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만왕의 왕의 위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케하신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친히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친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십니다. 이에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잠못이루는 수많은 날들은 나에게 괴로움이었습니다. 외로움이었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야 기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복된 시간들이었습니다.
부전교회 경로식당에 화요일 마다 모이시는 외롭고 힘들어 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소외된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아프리카의 굶어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북한의 힘든 동포들이 생각났습니다.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뼈저리게 닥아왔고
주님의 그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수있었습니다.
주님께 꾸어주는 일 ---- 그것이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는 밤들이었습니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그들을 품어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도를 눈물로 하게 되었고 그래도 구하고 찾고 두드릴수있는
하나님의 자녀인것으로 인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울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아들이 아버지에게 토해내는 말을 할수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고아는 할 말이 있어도 토해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들어 줄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 꿈속에 까지 찾아오셔서 주님은 나는 너의 친구라고 찬송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피곤하여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고 천사의 찬송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찬송은 "위에 계신 나의 친구" 라는 곡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때 마다 한 없는 위로의 눈물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 찬송을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0) | 2009.03.28 |
---|---|
[스크랩] 토기장이와 질그릇 ㅡ조지 휫필드 (0) | 2009.03.27 |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라 (0) | 2009.03.10 |
교회를 위한 기도 (0) | 2009.03.09 |
의의 면류관을 주실것이니 (0) | 2009.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