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대신 현실을 택한 사람들
찬송 :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찬송 :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1.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2. 주께서 풍성한 은사를 내려 내 영혼이 나날이 복 받으니 주 예수를 그대도 구주로 섬겨 곧 따르면 풍성한 복 받겠네
3. 무거운 짐지고 애타는 인생 주 예수께 돌아와 곧 믿어라 내 주 예수 그대를 돌보실 때에 참 복락과 안위가 늘 있겠네
[후렴]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늘 빌으시네
말씀 -----민수기 32:1 - 32:15
[말씀 요약]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가축을 치기에 적합한 요단 동편 땅에 머물기를 요청합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저지른 불순종과 그 결과를 상기시키며,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멸망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인지라
1 The Reubenites and Gadites, who had very large herds and flocks, saw that the lands of Jazer and Gilead were suitable for livestock.
2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족장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3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4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2 So they came to Moses and Eleazar the priest and to the leaders of the community, and said, 3 "Ataroth, Dibon, Jazer, Nimrah, Heshbon, Elealeh, Sebam, Nebo and Beon-- 4 the land the LORD subdued before the people of Israel--are suitable for livestock, and your servants have livestock.
5 또 가로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5 If we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they said, "let this land be given to your servants as our possession. Do not make us cross the Jordan."
6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6 Moses said to the Gadites and Reubenites, "Shall your countrymen go to war while you sit here? 7 Why do you discourage the Israelites from going over into the land the LORD has given them?
8 너희 열조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내었을 때에 그리하였었나니 9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8 This is what your fathers did when I sent them from Kadesh Barnea to look over the land. 9 After they went up to the Valley of Eshcol and viewed the land, they discouraged the Israelites from entering the land the LORD had given them.
10 그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10 The LORD's anger was aroused that day and he swore this oath: 11 'Because they have not followed me wholeheartedly, not one of the men twenty years old or more who came up out of Egypt will see the land I promised on oath to Abraham, Isaac and Jacob--
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
12 not one except Caleb son of Jephunneh the Kenizzite and Joshua son of Nun, for they followed the LORD wholeheartedly.' 13 The LORD's anger burned against Israel and he made them wander in the desert forty years, until the whole generation of those who had done evil in his sight was gone.
14 보라 너희는 너희의 열조를 계대하여 일어난 죄인의 종류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15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14 "And here you are, a brood of sinners, standing in the place of your fathers and making the LORD even more angry with Israel. 15 If you turn away from following him, he will again leave all this people in the desert, and you will be the cause of their destruction."
하나님 앞에서 막힌 것 없이 친하면 담대해진다. - 김상복
[묵상]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정복한 요단 강 동편 아모리 족속의 땅(21:21~35)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요단 강을 앞에 두고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보다 길르앗 땅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가축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가축을 먹일 수 있는 넓은 목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앞에는 아이들과 가축을 이끌고 건너기에는 어려운 요단 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분배받느니 차라리 동편 땅이 자신들에게 더 좋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만약 가나안 땅을 분배한 후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면 그 시간과 수고는 낭비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소망 안에서 한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은 모세를 격노케 했습니다. 그들의 요청이 지파 간 갈등이나 군사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지파들도 어려움을 당하느니 차라리 좁더라도 요단 강 동편에서 함께 정착해 살겠다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역함으로써 파멸당한 사건과 같은 유형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파멸당할 것임을 직시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불신앙은 우리만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전체에 많은 해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작은 그룹의 욕심이 전체를 그르치는 위기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적용]
남극 펭귄이 살아가는 방법
자신을 나눔으로써 함께 누리는 협력의 정신을 통한 생존은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다. 남극 지방의 혹한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겨울의 기온은 영하 60, 70도가 보통이다. 1968년 8월에는 영하 88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남극은 절기가 한반도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8월이 가장 춥다. 게다가 겨울철 몇 달 동안은 해가 뜨지 않는 암야기(暗夜期)가 이어지고 극지 특유의 강풍까지 불어온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생물은 살아간다. 특히 펭귄의 월동 지혜는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겨울이 다가오면 펭귄 무리는 극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이 생태계의 철칙이지만, 펭귄은 반대로 가장 추운 곳을 찾는다. 강풍을 피하려는 슬기의 소산이다. 극점에 도달한 펭귄 무리는 서로 몸을 맞대고 촘촘히 포개 앉아 원을 만든다. 그런 상태로 춥고 캄캄한 겨울을 보낸다.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가혹한 추위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리다툼을 자제한 채 하나로 뭉치는 지혜가 펭귄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펭귄은 자신의 체온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의 체온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진정한 협력은 자신의 것을 먼저 내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결과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은 은혜의 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것을 내놓음으로써 몸의 공동체에서 은혜의 덤을 누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는 낙심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것에 지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낙심은 마귀가 가장 잘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 우리의 능력이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무너뜨리기를 원하며 우리를 낙심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마귀와 부정적인 생각들, 당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모든 낙심과 맞서 싸우십시오-----릭 워렌
☞ 이무석 교수와 떠나는 내면 여행 (어느 외과 의사의 간증)
의과대학에 다닐 때 K 교수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 고함을 지르고 욕도 잘하셨다. 그분이 회진하시면 우리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었다. 수술 중에 실수한 레지던트를 때려서 내쫓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하지만 그분의 수술 실력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일 예배 시간에 헌금 위원으로 봉사한다는 사실이었다.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던 그분이 헌금대를 들고 있는 모습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K 교수님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었고 그분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돼 있었다.
어느 날 나는 K 교수님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어. 비과학적이라 생각했지.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말기 암 환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욕을 하며 불안에 떨다가 죽어 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어.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런데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환자가 있는데, 그분의 얼굴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어. 그분은 지독한 통증을 잘 참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어. 내가 회진 나가면 그분은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어. 나는 생각했어.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모두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죽음 앞에서 편안할 수 있을까? 저분에게 뭔가가 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분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어. 그분에게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지. 그런 후에 주위를 살펴보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다르더라고….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데에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분의 영향이 컸어.”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의 실존적 불안이다.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라 해도 죽음은 두렵다. 죽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지식도, 지위도, 꿈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죽음 후에 들어갈 암흑과 같은 미지의 세계는 공포감을 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요 6:47).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하나님의 자녀는 그분의 생명인 영생을 받았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자. ‘죽음 앞에서 나라면 어떤 심정이 될까?’
●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기 위해 약삭빠르게 행동하지 않습니까?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태도는 없습니까?
● 작은 이기심이 전체에 갈등, 불화, 손해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한마음과 한뜻으로 공동체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까?
[기도]
제 욕심만 챙기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젠 어린아이 같은 미숙한 습성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의 유익을 위해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