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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관료들 망언 볼 때마다 강제징집 치 떨려”

천국생활 2008. 11. 14. 10:24

日관료들 망언 볼 때마다 강제징집 치 떨려”

일본고위 관료들의 잇단 망언과 역사교과서왜곡을 보면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떠올라 치가 떨립니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태평양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하와이에 수용됐던 한영기(91·울산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사진) 씨.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문을 발표해 경질된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항공막료장이 최근 일본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 함께 수용됐던 한국인 4000여 명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자유한인보’를 “일본이 한국의 선량한 백성을 강제로 전장에 몰아넣은 명백한 증거”라며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자유한인보는 당시 미군이 포로들에게 나눠준 회보.

한 씨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것은 1943년 7월. 새벽에 모내기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면서기에게 불려간 것. 그 길로 일본군에 편입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갔다. 오키나와沖繩에 배치된 뒤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미군의 폭격으로 강제 징집된 한인 가운데 70% 이상은 죽었다고 한 씨는 기억했다.

한 씨는 1945년 6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에 포로가 돼 포로수용소에서 8개월간 생활한 뒤 1946년 1월 인천항을 통해 고국 땅을 밟았다. 2년 6개월 만이었다.

자신이 당했던 만행을 후손에게 알리기 위해 그때의 일을 편지지 20여 장에 빼곡히 적어 보관하고 있다는 그는 “일본과 우호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의 한국 침탈이라는 역사적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