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부으심을 보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또 나를 억지로라도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나다에 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실은 밴쿠버로 가는 비행편이 없어서 다음 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일정을 잡아놓았었지요. 대한항공 관계자 분들께 부탁해서 밴쿠버를 거쳐 하루라도 빨리 갈 수 없는지를 물었지만 이번만큼은 방법이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몽골을 떠나는 당일 날 몽골에 비바람이 불었고 또 먹구름이 너무 짙게 깔려서 결국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한국에 들어가서 바로 출발하는 밴쿠버 행 표로 최종 예약이 되었으면 제가 시간내에 들어가지 못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네 명 표를 다 바꾼다는 것은 성수기에 무척 어려울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 날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좌석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밴쿠버를 거쳐서 보다 값싸고 편리하고 시간을 절약하여 에드몬튼까지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몽골의 기상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다른 행로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다음 날도 비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왔는데 일기 예보상으로는 며칠간 그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 비행기 이착륙이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밤 비행기가 왔고 우리는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려고 카운터에 갔더니 아이들의 미국 비자가 없어서 미국 경유가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은 밴쿠버로 일정을 예상하다가 미국 경유로 바뀌었기 때문에 별도로 미국 비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미국에 있을 때 만들어 두었던 미국 여권을 들고 오는 것을 아내는 깜박했습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남고 저만 캐나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비행기표도 절약해서 다른 사역자들의 어려움을 돕는 일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모처럼의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생각에도 시차 문제나 여행의 피로 등을 생각할 때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것이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왜 기도 중에 아내는 계속 "너도 같이 가라"라는 말씀을 받은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이런 일을 당하면 실망하게 되고 더 응답을 추구할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혼란을 겪게 됩니다. 아내에게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같이 가라는 말씀 자체에 어디까지 어떻게라는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이 경우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 생각이 들어가서 우리 식대로 결론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나 저는 이것이 캐나다까지 같이 가는 것이라고 믿었고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까지만 같이 가는 것이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전체가 캐나다까지 가는 것을 원하셨다면 아이들 서류 준비하게 하시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보다 섬세하고 정확하게 인도하심을 구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들어가면 자신의 생각이 섞여 뒤틀어짐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내는 속으로 나와 함께 캐나다 동행을 바랐던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늘 남아서 기다리는 자로써 있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지요. "가서 기도로 도와라"라는 말씀에 자연스럽게 몇 가지 자기 단어가 더 덧붙여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떻게 들었든 하나님께서는 상황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하나님의 방식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잘 모를지라도 그 뜻 가운데 거하고자 하는 소망과 열심이 있으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단 주님의 뜻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당혹감과 경외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허술하게 듣고 실수하는 모습의 저에게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것과 관련된 글을 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음성듣기를 위한 어떤 매뉴얼보다는 나의 실수를 포함한 삶의 전과정을 나누라는 생각이신가에 촛점 맞추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따라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서 나뭇잎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으로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람은 임의대로 움직입니다.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어떤 원칙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람은 자유하고 묶이지 않은 어떤 힘으로 보입니다.
나뭇잎은 그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에 자신을 맡깁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이지요. 성령에게 취한 사람에게 종종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령의 사람처럼 자유하신 분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분이셨고 감당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항상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대답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예측불가능한 행동이셨지만 뒤돌아보면 정말 그 이상의 행동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위 중에 인간이 (심지어는 사탄도) 가장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십자가만큼 불공평한 일이 있을까? 죄인의 구원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불공평하고 의롭지 못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은혜로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불평하는 경우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여행에서 제게 이 불공평한 십자가, 세상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사의인 복음에 대해서 전하라는 부담을 주셨습니다.
어느 교회나 집회에도 미리 성경 본문이나 말씀 제목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교 이야기나 학교 사역의 다양한 필요에 대해 나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제가 하나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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