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소통하는 교회
숭실대 김희권 교수의 현대교회론
현대교회, 정체성 · 상관성 위기
김회권 교수는 위르겐 몰트만(Moltmann)이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의 기독교 위기를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와 상관성 위기(relevance crisis)로 규정했다.
‘정체성의 위기’란 그리스도인 됨의 위기이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어 있고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안에 작동하는 세계관의 법칙에 따라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다원주의적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하지도, 기꺼이 내세우지도 못하는 위기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상관성의 위기’는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맡겨진 신앙의 비밀을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달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데 발생하는 어려움을 말한다. 교회는 세상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세상 관여적, 세상 참여적, 세상 변혁적인 입장을 취하여야 한다. 상관성은 교회가 어떤 점에서 세상에 요청되는 기관인지, 왜 세상은 교회의 복음선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상관성에 있어서 심각한 도전으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교회가 바른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세상과의 소통과 상관성 구축에 가장 효과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도 결국 ‘교회의 정체성과 상관성의 위기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의 장벽과 세 가지 소통방식
김회권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교회와 세상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몇 가지 장벽을 소개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 이해 결핍 둘째, 세상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관철시키려는 개혁주의적 신앙관의 결여 셋째, 세상의 강경한 쟁점들을 다룰 수 있는 신학적 소양 결핍,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변혁적 직장생활이나 시민활동의 역사와 전통의 결핍 등으로 인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의 기독교적 신앙소통과 표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회권 교수는 세 가지 소통양식을 소개하면서 이런 결핍상황을 돌파할 길을 모색해보고자 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는 복음전도적 소통, 중보자적 소통, 그리고 변증적 소통을 제시했다.
1) 복음전도적 소통(evangelical communication)
복음전도적 소통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고 가르치고, 경험케 하고(치유사역과 축사사역), 청중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하여 회개로 응답하도록 만드는 소통이다.
세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소통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선포이다. 복음선포는 객관적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통치)와,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회개요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복음전도적 소통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출발되어진다. 바깥세상을 향한 복음전도적 소통은 교회 자신을 향해서는 부단한 회개요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자체의 회개와 갱신 없이는 어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도 바깥세상을 향해 회개의 결단을 촉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중보자적 소통(intercessory communication)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세상을 향한 소통의 두 번째 형식은, 세상의 아우성과 고통을 하나님을 향하여 쏟아내는 중보자적인 소통이다.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은 세상과 원수 맺는 것도, 세상과 짝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탄식과 고통에 공감하며 세상을 하나님의 복음에 대면시키는 중보자적 사역이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은 중보자였다. 기도를 통해 세상의 고통과 탄식을 하나님께 전달한 소통의 대행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통역했을 뿐만 아니라 땅의 언어를 하늘의 언어로 통역한 사람들이었다. 구약 예언자들과 나사렛 예수의 중보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더욱 확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중보였다.
교회는 주일마다 공기도 시간에 이 땅의 넘치는 불의와 압제, 탐욕과 독점의 체제를 거룩하게 전복시켜주시도록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려야 한다. 애가와 탄식으로 표현되는 이런 중보자적 소통이 활발해지면,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 될 것이며 희망의 거소(居所)로 복원될 것이다.
3) 변증적 소통(apologetical communication)
세상의 철학과 세계관을 이용해 기독교신앙 진리를 변증하고 옹호하며 소통하는 변증적 소통이다. 변증적 소통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유포되어 있는 개념들이나 사상, 혹은 시행되고 있는 관습들과 제도들을 발판삼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증거하고 체험케 하는 과업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 세상의 문명권과 그것의 토대가 되는 종교와 철학과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충돌이 반드시 폭력을 동반한 상호 적대행위로 나타낼 필요는 없다. 사도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보여준 것처럼 토착사회의 기존세계관과 복음 사이에 대화 및 접촉가능지점이 있는지를 숙고한 후 대화적인 접근을 취할 수도 있다.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거짓된 종교성과 오류로 가득 찬 철학과 사상의 집에 유폐된 영혼을 건지기 위한 ‘복음’의 변증사역에 기꺼이 동참해야 할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다원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기독교가 주관적 경험영역만을 말하는 사사화된 담론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공론적 영역에서 비판과 판단을 기꺼이 감수하며, 이방 철학과 세계관들의 모순과 부조리를 지적하고 기독교복음의 충족성과 온전성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김회권 교수는 현대교회의 위기를 정체성과 상관성의 위기로 보고, 이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소통방식의 원칙을 제시했다. 분명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불통(不通)의 경험가운데, 특별히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정체성과 상관성을 가지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론의 원칙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하겠다.
분명 소통의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과제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있어서도 세상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이 곧 교육과 선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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