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시편 51:1]
캐리 박사가 위험한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이 병이 죽을 병으로 판명된다면 박사님의 장례식 설교를 위해 어떤 구절을 본문으로
택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해 캐리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오, 이런 불쌍하고 죄많은
피조물에게 무슨 장례식 설교까지 해주시려 하십니까? 그래도 굳이 장례식 설교를 해야 한다면
이 말씀으로 해주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그는 그와 똑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 외에는 아무것도 새기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윌리엄 캐리, 1761년 8월 17일 태어나
_____년 _____월 _____일에 죽다.
“더럽고 불쌍하고 무력한 벌레인 제가
주의 친절하신 팔에 안깁니다.”
이렇게 경험 많고 존경받던 성도들도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초 위에서만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일수록 자기들은 기껏해 봐야 인간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절감합니다.
빈 배는 높이 뜨지만 무거운 짐을 실은 배는 물 속으로 낮게 떠 갑니다. 말로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자랑할지 모르지만 참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익한 자신에게 주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우리의 선행, 우리의 기도, 우리의 설교, 우리의 구제, 우리의 가장 거룩한 일들,
이 모든 것 위에도 주님의 긍휼이 베풀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집 문설주에 뿌려짐과 동시에 성소와 속죄소와 제단에도
뿌려졌던 것과 같습니다.
죄가 우리의 가장 거룩한 것들 속에도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 더러움을 씻기 위해 예수님의 피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행하는 이런 의무들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우리의 패역을 회복시켜 주며, 우리의 상한 뼈들로 기뻐하게 하기 위해 무진장한 긍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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