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친구
매일같이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30대 비슷한 또래의 그들은 사이좋게 길을 걸으며,
아침으로 먹을 토스트를 사기도 하고,
주말에 뭐 했는지, 어제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한눈에 봐도
정다운 친구 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발걸음이 조금 느릿느릿합니다.
가만 보니, 흰 지팡이를 짚고 있는 시각장애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친절히 그에게 길 안내 중입니다.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버스 정류장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벌써 수년째 시각장애인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한 남자...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한 요양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성진 씨가
한 시각장애인의 길잡이가 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원래 길잡이로 봉사하던 직장 상사분이 퇴직하시면서
그 일을 이어서 맡게 된 것입니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까지 횡단보도가 3개나 있고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움푹 파인 곳도 많았습니다.
눈이나 비 오는 날은 위험천만할 때가 더 많았기에
그는 선뜻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같은 방향으로 출근하시는 분이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각장애인인 현기 씨의 길잡이를 하기 전에는
그저 반복되는 바쁜 출근길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아침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누구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현기 씨를 보며 삶의 도전을 받는다는 성진 씨.
무엇보다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가 생겨 기쁘고 든든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도움이 되는
두 사람은 '벗'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김성진 씨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기 씨를 만나고 그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시간이
좀 걸리고, 느릴 뿐이지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을 보며 성진 씨는 자기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이의 친구가 되어 세상을 보니
너무도 불편하고 배려 없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장애인들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함께 사는 세상이잖아요.
조금만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따뜻한 시선으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니까요."
그래도 한두 번이면 모를까,
수년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같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바쁜 출근길에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도
그는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칩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제가 하는 일을 봉사나 나눔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그냥 매일 아침 친구와 함께 출근하며 길을 걷고,
세상 사는 이야기하는 것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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