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적 비판과
WCC의 우주화 내지 확대 또는 보편화된 ‘그리스도’ 개념은
‘예수’의 인격성이 배제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죄인과의 인격적 만남이 없고,
그러한 인간은 예수께서 ‘알지 못하는’ 죄인으로 남아있게 되며(마 25:12),
이로 인해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살후 1:8-9).
또 성령의 인격성이 배제된 ‘성령의 보편화’ 신학은
성령의 인격적 영접을 배제함으로(요 14:16-17, 행 1:4-5),
이 신학을 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날 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게 된다(요 3:3, 3:36, 7:38-39).
이러한 반성경적 보편주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 이단적 신학으로 기울어지고, 성경적인 세계선교를 질식시킨다.
WCC는 복음주의자들이 가장 큰 소명으로 아는 전도와 선교의 개념을 다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세계 복음화도, 세계 선교도 아니다.
WCC는 잃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WCC 선교신학,
즉 Missio Dei 신학은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적 신앙을 떠난
정치·사회적 샬롬(Shalom) 운동이며 해방운동에 불과하다.
4차 웁살라 총회에 참석한 영국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아래와 같이 탄식하였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직도 복음화되지 못한 수백만의 영적 기아에 대해 염려하는 바를
이 대회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육체적 갈망과 기아와 가난과 불의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WCC ‘선교와 전도분과(CWME)’의 연합운동이
일원론적 역사관 때문에 교회연합운동이 아닌 세계연합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이중적·모순적 고백으로 점점 흘렀고,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제시하는 구원은 만인구원, 자동구원 또는 세속적 구원으로 왜곡되었으며,
성경적 이신칭의의 구원관을 분실하게 됐다.
필자는 세속정치와 경제통합운동과 병행하여 WCC와 가톨릭이 이미 반 세기 전부터
탈기독신앙적 세계일치 운동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더욱이 이번 제10차 부산총회가 복음주의자들의 대량후원으로 WCC의 방향을
성경적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 보았으나,
결과는 뻔하게도 WCC의 이중 진술과 가면에 모두 말려들어
그들의 힘만 키워주게 됐음을 허탈하게 바라볼 뿐이다.
WCC는 1960년대 이래 한 번도 복음주의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방향을 바꾼 적이 없다.
오직 이중, 삼중적 모든 모순을 끌어안고, 3억 3천의 귀신을 섬기며, 일원론, 이원론, 범신론, 다신론을
다 끌어안은 힌두교의 종교철학처럼 WCC는 더욱 혼합적으로 거대해진 ‘가시적 일치’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특징들을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 WCC 선교관이 상실한 개념들: 1960년대 이래 WCC의 CWME 보고서와 선언문에서는
영혼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심판, 불신자의 멸망, 사후 천국과 지옥, 몸의 부활 같은
성경적 중심개념들이 사라져 버렸다.
우상숭배, 이단, 그리스도의 유일성, 구원의 유일성, 구원의 확신, 영 분별, 선교, 파송, 선교후원,
개종 등의 단어들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우상숭배’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가톨릭의 십계명에는 두 번째 계명인 우상숭배 항목이 빠져 있다.
가톨릭은 우상숭배에 관한 개념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다.
가톨릭은 이 둘째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허용했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던가에 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WCC와 가톨릭은 ‘우상’이라는 개념과 ‘우상숭배’라는 개념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 포용주의: WCC의 CWME는 자연계시만 알고(행 14:17) 우리의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수계시(구원계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9절 이하 하나님의 자연계시 때문에 우상숭배자들이 사형죄인들이 된 것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WCC는 막연히 오직 현재적인 자동구원 또는 만인구원적인 희망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WCC와 가톨릭은 타종교들과 연합을 시도하기 전에 그들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차이를
분별하고자 하지 않고, 창조론과 창조자를 알지 못하는 범신론 종교들의 문제를 연구도 하지 않는
불가지론적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은 오히려 우상숭배자들을 향해 ‘다른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 호칭하면서,
기독교와 동등한 생명의 가치로 간주하고 있다.
3. 반개종주의: 가톨릭과 WCC의 선교분과 위원회(CWME)는 1960년대 이후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개종선교를 포기했고, 그 후 다시는 번복하지 않았다.
이들은 타종교인들의 구원을 위해 회심과 개종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종선교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도 오래 되었다.
그 대신 온 세상의 샬롬, 온 우주적인 화해, 상생(living together), 현재적 ‘구원’ 내지 샬롬을
최우선적으로 중요시한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과 행동주의는 한국에서 불교 같은 타종교의 목적과 그 지도자들의 설법과 병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WCC와 타종교들은 더욱 친해지고 그들과의 연합행사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구소련 정교회권과 중남미 가톨릭권에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잃은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을 WCC가 사악하고 반역적인 행사로 정죄한 사실이야말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두려운 행사다.
회심과 개종은 ‘세례 받는 일’과 구별되어야 한다.
고넬료는 세례받기 전 성령을 받고 회심하였다.
진정한 회개와 개종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고,
사람이나 기관으로가 아닌 하나님께로 돌이킨 일이다.
회심과 개종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증한 것이고
인간의 힘과 수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고전 12:3).
WCC는 각처에서 일어나는 회심과 개종을 적극 환영해야 한다.
오늘날 이 같은 반개종주의적 환경에서 복음전도자들은 조용히 순교적 사랑을 부으면서
잃은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복음적 개종선교에 더욱 힘써야 한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회심선교(마 4:17)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마지막 유언이기도 하다(눅 24:4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 헌신하여 회심선교를 수행,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얻도록 온 힘을 다 해야 한다(막 16:15f).
4. 세계연합운동: 20세기 후반부터 WCC와 가톨릭은 기독교 밖의 정치통합운동과 경제통합 운동과 병행하여,
세계연합운동을 추진한다. WCC는 잃은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아픔이나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시도 없이,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신앙고백과 동시에 종교다원주의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이중고백에 취해 있다.
WCC는 성령의 감격이나 하나님께로의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 없이,
오직 이웃과의 평화와 돌봄의 행위들을 촉구하고 오직 인류와의 ‘가시적 연합’을 위해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종파들을 가시적인 통합체로 더 크고 광범위하게 혼합하고 뭉칠 뿐이다.
이번 부산총회의 세계연합운동 특징 중 두드러진 현상은
모든 종교와의 일치를 포함한 ‘우주연합’의 동향을 보인 것이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갖고 있지만, 믿음이나 행위에 대해 아무 신조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니케아 신조와 종교다원주의를 동시에 고백할 수 있고,
1970년대 이래 WCC 대화 프로그램의 책임자들처럼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을 늘리고 확장시켜
불신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교리를 만들고자 한다.
‘교회의 가시적 일치’의에 대한 염원은 ‘신앙과 직제’ 뿐 아니라 제2바티칸회의 역시 강력하다.
그러나 가톨릭의 입장은 다르다. 교황의 수위권이나 화체설이나 죽은 자들과의 교제신앙 등
특수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결코 버리지 않으면서, 세계 종교통합운동을 성취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교히 수호에 관심이 없는 WCC가 가톨릭에 흡수통합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WCC가 바라는 ‘우주연합’을 위해 가톨릭교회와의 일치가 불가피하다면,
가톨릭 교황을 수장으로 받아들이고 그 지배 밑으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없을 것이다.
5. 복음주의의 협력: 이러한 WCC 단체 속으로 일부 복음주의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난 제10차 WCC 부산총회의 특징은 일부 복음주의 단체들과 한국의 상징적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WCC의 거대한 후원자들을 자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을 믿고 따르는 한국교회 신도들도 무비판적으로 WCC의 신앙과 신학적 흐름에 탑승하고 있다.
그러나 WCC에 소속된 교회들을 포함해 한국의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은
성경만큼은 신앙의 핵심으로 확실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부산총회 이후 WCC의 혼합된 복음과 신학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에서
성경적인 회개운동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는 있다.
다만 WCC 가입 교단에 속한 교회들의 복음선교 선교현장에서 회개와 개종이 일어날 경우,
WCC로부터 “개종주의자, 독선, 이기주의자 또는 규칙위반자”라는 비판이나 핍박을 받을 수 있다.
6. 분열: 부산총회 이후 한국교회는 복음적 그리스도인과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이 더욱 심화되고,
이전보다 분열의 상처가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 양상은 종교다원주의나 반개종주의 같은 속된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성경적 그리스도인들과,
세계의 평화공존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적 방법이라고 보고 ‘가시적 교회연합 운동’과 ‘인류연합운동’을 위해
성경도 신앙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세속적 그리스도인들로 더 확실하게 나뉠 것이다.
결국 WCC 부산총회 이후 한국교회 연합운동은 세속적 연합운동과 성경적 연합운동으로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말세의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22:11)”
8. 탄압: 머지않아 UN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합운동과 종교통합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UN의 공증을 받은 종교지도자만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성경의 예언과 같이 적그리스도의 통치와 짐승의 칩을 통한 단일종교 내지 세계종교(Inter-Religion)의 때가 이르면,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반개종주의적 WCC 신학을 거부하는 복음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 아래
개인의 믿음을 최우선적으로 중요시하고, 불신자의 멸망, 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는 회심과 개종을 통한 구원(요 1:12-13),
재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종말적인 구원과 심판,
이웃을 위한 사회적 봉사 등의 성경적인 약속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신앙과 선교의 내용으로 알고 있다.
한국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윤리·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며,
복음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며,
마지막까지 진실하게 순교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은 성경적인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할 것이다(마 28;18-20).
/이동주 박사(아신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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