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 갑을관계 사회

천국생활 2013. 8. 1. 05:21

• 갑을관계 사회

 

대통령을 수행했던 한 고위 공직자가 젊은 인턴에게 한 파렴치한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폭력입니다.

젊은 대기업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 주인에게 가한 폭언과 협박이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비행기 승무원을 괴롭힌 이른바 ‘라면 상무’, 호텔 주차관리원을 장지갑으로 폭행한 ‘빵 사장’….

이것은 모두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증대했지만, 정신은 성장하지 못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단면들입니다.

 

사람들은 일쑤 돈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을 한 사람의 존재의 무게로 치환하곤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곤 하는 ‘갑을 관계’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함의를 갖는 말인지 새삼 절감하게 되는 나날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발 빠르게 계약서에 갑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그 불평등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일 뿐입니다.

사람을 고귀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사회는 몰락의 벼랑 끝에 선 위험 사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에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모독당하는 것은

곧 그를 지으신 하나님도 모독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 곧 ‘욕망 충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소비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사회는 모든 사람을 구매력에 따라 평가합니다. 구매력이 없는 사람은 하찮게 여겨집니다.

없어도 그만인 잉여인간으로 취급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단호히 이러한 풍조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타신 배가 파선의 위협에 직면했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배를 타고 맞은 편 마을로 가고 있을 때 주님은 고단하셨던지 깊은 잠에 빠지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바람과 풍랑이 일어나 배를 덮쳤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들어 계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주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고는,

바다를 향해 ‘고요하고 잠잠하라’ 하고 명령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잠잠해졌습니다. 놀라운 자연 이적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바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네모스’(anemos)는 ‘풍조風潮’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복음사가는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이 경험했던 이 사건을 통해, 당시의 교회가 직면하고 있던 위기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제시하려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위태롭게 했던 ‘바람’ 혹은 ‘풍조’는

외부의 박해일 수도 있고, 교회 내에 스며든 세속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풍조에 맞설 수 있는 내적 든든함이 없었기에 교회는 파선의 위험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잠잠하게 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그런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교회라는 배도 소비주의의 ‘풍조’에 밀려 좌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갑을 관계’라는 말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풍조에 맞서는 영적 능력이 우리에게 너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