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하나님의 팔을 잡은 모세같은 지도자

천국생활 2013. 8. 16. 12:42

하나님의 팔을 잡은 모세


 인권변호사이신 한승헌 선생님은 기독교신앙을 일컬어 ‘차마이즘’이라 했습니다.

자기가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붙잡힌 젊은이들을 변호인조차 없이

차마 홀로 법정에 세울 수 없어서, 겁 많고 소심한 자기가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쓴 단어가 ‘차마이즘’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포함하지만 순종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이웃에 대한 책임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가고 계신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가련한 사람들을 위해 불경함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자기를 끊을 수 없다던 바울 사도가 9장에 와서는

동족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것조차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9:19)

스스로 종이 되는 자유처럼 큰 자유가 또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모세도 참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설득하려 애씁니다.

자기가 이해한 하나님의 품성과 역사를 과감히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모지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예 문제도 거론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상징되는 불의한 질서를 전복시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새 세상의 꿈을 펼치기 위해 시작하신 그 원대한 역사가

그대로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인간적인 위계사회를 철폐하기 위해 시작하신 출애굽의 꿈이

광야에서 잦아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지시만 받고 살았던 사람들과 언약을 맺기 전에

그들의 동의를 구하시던 그 하나님이 두고두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고, 사랑이 넘쳐서,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와 허물을 모른 척 넘어가시는 분은 아닙니다. 불신앙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모세는 그것조차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세의 이 기도를 읽고 또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우리에게는 국민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머리좋은 사람들이 모인 정치판이 가장 시끄러운 까닭이 무엇일까요?

 대의명분과 달리 그들은 공익보다는 자기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치인들만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종교계든 경제계든 교육계든 문화계든 상황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초월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진 세상,

모든 생명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이제 사탄에게 넘어갔던 지배권을 회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먼저 우리들 사이에 드리운 분리의 담들을 허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벽도 밀다보면 문이 된다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실천의 선봉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가르고 나누는 일보다 하나 되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 나라를 분단의 질곡에서 건져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미움과 분열과 갈등을 확대재생산함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의 의도를 폭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온몸을 던져 하늘과 땅, 유대인과 이방인, 계층과 계층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게 하심으로 평화의 왕이 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옛 질서와 새 질서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힘겹지만 평화의 세상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삶이 힘겹더라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쓸 때 삶의 무게는 가벼워집니다.

이 신앙의 비밀을 깨달아 오늘도 내일도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