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소녀 마리아
마리아는 개신교도들에게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를 중보자로만든 가톨릭의 그림자 때문인지 개신교인들은 마리아 이야기를 좀 꺼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우리가 아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분입니다. 그는 신앙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10대 초반에 불과했던 한 소녀가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한 복판에 섰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하기만 합니다.
요셉과의 신혼살림을 생각하며 혼자서 얼굴을 붉히곤 했을 마리아의 삶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으로 인해
전혀 예기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너의 몸이 필요하다는
천사의 전갈을 들었을 때 마리아가 느꼈을 당혹감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잘못되면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과의 결혼도 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를 내놓았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1:38)
놀라운 고백이요 응답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이러한 결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장 46절부터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를 참조해야 합니다.
그 노래를 보면 마리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세상이 얼마나 불공정한 곳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아픔도 알고,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도 잘 압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기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새로운 세상을 낳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지나친 속단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은 여성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여성이라는 말보다는 여성성이라는 말이 적합하겠습니다.
여성학자인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1932- )는 남성들이 여성성을 확보할 때
인류는 평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여성의 몸이 갖는 특수성에 대해 말합니다.
“여성의 몸은 병이나 거부반응, 생체 조직의 죽음을 유발하지 않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자라도록 관용하는 특수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은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편협함 때문입니다.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문화와 종교가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신앙의 모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동일시 하여 찬양할수는 없습니다.
마리아에게서 신앙이 무엇인가를 배울수있고
마리아와 같은 신앙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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