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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유래

천국생활 2009. 12. 16. 12:07

성탄절의 유래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성탄절'은 전 세계인의 축일이다. 이러한 기쁨과 축하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초기의 기독교에서는 이와같은 축일이 따로 없었고, 오히려 1월 6일의 신현제(神顯齊:지금은 1월에 시작되는 주현절-현현절 교회력)가 그리스를 비롯하여 동방교회에서 축하되었다.

최초의 성탄 축일은 2세기 경 5월 20일에 행하여졌다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기록에서 발견되고,

그 뒤로 AD243년 키프리안의 저작으로 꾸며진 <파스카의 날짜 계산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3월 28일을 탄생일로 언급하고 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3세기 경부터 그것을 12월 25일에 행하게 되었으나 그리스도가 이 날에 탄생했다는

기록은 없고 단지 전례상 그 날로 정하였을 뿐이다.
지금 서기력의 착오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해는 주전 4년으로 본다.

여러 세기 동안 교회는 아무도 예수님의 탄생일에 관하여 이렇다할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가장 성경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론은 스가랴의 세례요한  수태고지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사가랴가 '속죄의 날'에 섬기다가 세례요한의 수태고지를 받았고(10월), 그 후로 6개월 후에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되었는데(3월) 그렇다면 예수의 출생은 자연스럽게 12월이 된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유대교의 전통에 의존할 때이다. 유대 전통은 24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는 제사장들이 매주 교대로 성전봉사를 담당했으며 사가랴는 8등급이었고, 그가 봉사한 시기가 10월2일에서 9일까지이다. 이러한 계산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잉태는 3월에 이루어지고 12월에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 축일의 공적인 일자로 정해진 것은 31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축제일인 태양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도록 공포한 데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12월 25일을 교회의 절기로 인정한 기록은 313년 훨씬 이전에 나온다.

성탄절은 영어로 크리스마스 곧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라는 말과 'mas'라는 말의 합성어로
'예수의 날'이라는 뜻이다.

화란어로는 컬스트 미세스,

라틴어로는 디에스 나타리스,

프랑스에서는 노엘,

 이태리에서는 일 나탈리스,
독일에서는 '성처녀로부터 나옴'이라는 의미로 바인 나크 훠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현금에 우리 교회들이 산타 크로스를 중심으로 파티, 레크레이션, 선물교환, 발표회 일색으로 크리스마스를 꾸미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마스이다.

초대교회가 수세기 동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이렇게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첫째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 사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탄생일보다 주님께서 죽으셨던 사순절 기간 중
성 금요일을 더 중요시하며 성 금요일을 파스카의 일부로 지켜갔다.

둘째로, 성탄절을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라는 로마 이교도들의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교도의 축제는 밤이 점점 길어지던 날이 끝나고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이런 동지에 관한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마다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12월 22일을 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 문설주에 바르고 먹는 등 악귀는 물리치려는 척사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
3세기의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섬겼다. 그리고 그 시대의 로마황제는 태양의 후손으로 숭배되었다.
274년 12월 25일을 태양의 생일로 축하했는데, 그것은 그때가 달력상 동지였으므로 낮의 길이가 짧아져 태양이 힘을 잃어가는 것으로 이해한 그들이 동지를 지나면서부터 낮의 길이기 길어졌기에 태양이 힘을
더해간다고 믿게됨으로 이날을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날로 축하했다.

그로 인해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황제숭배가 강요되었고 태양신의 생일도 당연히 축하하도록 요구되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로마황제가 결코 신이 아니며 하나님의 피조물인 태양을 신으로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피박과 고통이 주어졌다.

공직을 박탈되고 그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으며 화형을 당하고 맹수들과 격투하며 잔인하게 죽기도 하였고 반역자로 몰려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였다.

그런 엄청난 고통이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로노 칙령이 있기까지 계속되었다.

교회가 피를 흘리는 아픔의 결실로 인해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변화되는 전기를 맞았을 때, 로마는 황제숭배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게 되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313년에 12월 25일을 태양의 생일이 아닌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바꾸어
축하하게 됐는데 이것이 성탄절의 기원이다.

그런데 신선해야할 주님의 성탄절이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난 후에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걸었으며,

그 결과 성탄의 본질은 간 곳이 없고 이교도적인 종교행사만 남아 그것이
성탄을 대신하고 기독교를 대변하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고 주님의 권세 아래 다시 서게 됐을 때,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성탄절이 너무 이교도적인 행사뿐이고 또 그 기원이 이교도들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해서 비판하고 그날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서 교회의 태도가 많이 바뀌므로, 교회가 상업화와 세속화를 부채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12월 25일을 다시 성탄절로 성화시켜 지키게 된다.

이것이 교회가 12월 25일을 주님의 성탄일로 지키고 기념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처럼 우리가 이날을 주님의 성탄절로 축하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음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