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내려놓음_-이용규 선교사

천국생활 2008. 3. 3. 17:22

내려놓음(1권)과 더 내려놓음(2권) 

 

지은이 : 이용규 선교사

 

 

(요약)

 

얼마나 더 내려 놓아야 하나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내려놓기를 원하지만 진정 내려놓음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용규 선교사는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몽골에 가서 선교사일을 하고 있으니 내려놓을 것도 많겠지만 우리는 별로 내려놓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궁극적으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의 예수님께 의탁하는 일이다. 내려놓음은 평생동안 지속될 과정이다.

 

영적생활에서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은 주님께 묻고 맡길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보고 또한 맡겨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명, 영적 성장, 영적유익, 하나님과 교제, 섬김, 이에 관련된 것들은 반드시 물어야 할 것들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일들--배우자 선택, 직장, 사역과 훈련과 그 원칙세움, 의식주 문제 등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이다. 제일 먼저 세상을 내려놓을 때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일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우리의 행복 만드는 도구로 취급하기 쉽다. 그래서 이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린아이같이 움켜진 것을 내려놓으면 빼앗긴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영혼이 닮았다고 느낀다면 내려놓을 수가 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내려놓을 수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려놓을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가 이다.

 

 


1.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의 시간과 때를 신뢰하면서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의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려져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니며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우리의 실수까지도 완벽하게 이용하신다.

 

 



2. 물질에 대하여도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분도 물질을 가져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믿고 내려놓게 하신다.

 

 

돈이 많아지면 돈을 의지하게 되고 돈이 신앙이 되고 안식처가 되며 성벽이 된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을 신뢰하고 텅빈 창고까지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소유권을 내려놓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과 동일한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신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사탄의 반대 방향으로 가게된다.

즉 적극적으로 내 것을 내려놓고 나눌 때에 더 풍성하게 하나님을 누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다. 사역중에 물질에 대해 정직한 리더를 만들지 못하면 실패하고 만다.

돈의 영을 이기지 못하면 예수의 제자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회의 지원을 받고 선교하는 분들이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주머니를 여는 헌신된 교인들의 마음을 의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역을 위해라기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도록 나의 삶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3. 육신의 건강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건강에서 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건강 때문에 두려워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모두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고 하나님은 선하신 뜻 가운데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과 그 최상의 것이 우리의 눈에 보기 좋은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내려놓을 때 마음속에 평안이 흘러들어 온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만지시는 것을 볼수 있다. 우리 모두의 죽음까지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평안이 와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탄은 물러간다. 우리의 안전의 문제를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가 우리 신앙의 성숙도를 보여 준다.

 

 


4.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의 경험으로 제한해서는 아니 된다. 내 열심과 경험만으로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자신을 낮추어야 할 때가 많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계획에 제약을 받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익숙한 것을 끊어 버릴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신다. 보이지 않는 길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 선교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부족한 자신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것이 선교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더 큰 믿음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면 멋진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일하실 수 있도록 내 것을 내려놓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내려놓음의 정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5. 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죄는 인간의 자아와 인격과 생명에 붙어 있으므로 죄만 없애버릴 수가 없다. 죄는 자기애를 먹고 산다. 죄는 우리의 자아와 합일되어 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비로소 십자가가 나에게 의미를 갖는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도 죽어야 한다. 그리고 죄에서 자유해야 한다. 죄짐을 다시는 짊어지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판단이 가져다주는 크나큰 영적 해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의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희소하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것인 반면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음의 영을 불러온다. 분별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분별하는 사람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있다. 그리고 책임을 느낄줄 안다. 영어성경에는 지혜를 분별하는 마음(discerning heart)이라고 번역했다. 지적하고 판단하고 비판해서 변화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모두 매우 훌륭한 사람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나는 판단할 권리가 없다. 내가 판단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교만의 핵심에 선악과가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하였다. 변화시키는 것은 격려와 사랑의 표현 그리고 눈물의 도고 기도이다. 영적인 진리 중 하나는 연합을 통해서만 부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으나 사탄은 결코 그렇게 기도할 수 없다.

나의 존재는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 있다.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더 잘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다.

 

 


6.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결핍에 초점을 맞추면 늘 부족하다. 좋은 학교를 다녀도 열등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항상 자기 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만큼 하늘로부터 오는 자유를 놓치게 된다.  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향기를 발할수 없다.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비교의식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한 복의 문을 여실 것이다.

 

 


7. 사역의 열매를 내려놓아야 한다.

 

 

 

  사역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려는 열망이 있어야 내려놓을 수 있다. 하나님보다 사역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사역에 구속된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내가 사람을 결코 변화시킬수 없다. 불순한 목적이 섞인 것을 받지 않으신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걸어가려고 방향을 정하는 때에 성령의 가도응로 우리는 위로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선교지에서 배운 것은 선교 대상자의 변화보다 선교사 자신을 깨어 예수님의 인격의 분량으로 자라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상한 마음과 함께 울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함께 울어줄 자들을 찾으신다.

 

 

 



8. 자기애를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은 내려놓으면서 결국 다른 뭔가를 잡는다. 내려놓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것이 내려놓음이다(갈2:20). 내려놓을 때 하나님으로 채워진다.

100%순종하겠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라고 순종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자기애로 일을 벌여놓고 하나님께 뒷수습해달라는 것은 아니된다. 이것만은 안 된다는 움켜진 것을 사탄이 이용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결정권자로 모시는 일이다. 자기 집착, 자기애를 내려놓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함이다. 세상은 자기 극대화 자기실현 자기 가치의 구현 이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나나를 지고 있는 원숭이는 성공한 것이 아니다.

 

 


9.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아직 죄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하고 상처입고 곱씹으며 살아간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어미 펭귄의 상처와 오버랩 된다. 어린아이는 엄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좋은 환경이아니라 좋은 부모가 더 중요하다.

 

 


10.자기 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내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과 얼마나 화해하고 있는가와 관계가 깊다. 나의 분노나 원한은 실제로 내가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칭찬받을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의는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풍성히 품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동일한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긍휼의 마음만이 관계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약점까지도 사용하신다. 자기의가 있는 사람은 순종하기 힘든다.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품은 서운함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쓴뿌리를 만든다. 하나님은 네가 깨어지지 않으면 너는 나와 그 이상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11. 자기가 최고로 생각하는 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일의 성과가 아니라 마음을 원하신다. 아들의 마음을 원하지 품군의 마음을 원하지 아니하신다. 우리의 노력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아버지의 임재하심 안에서 엄청난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와 거래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믿는 댓가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주님이 주시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은사중에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부어주셔야 가능하다. 사랑은 선물이지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을 보고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에 감동하지 않으신다. 일이란 하나님께서 혼자서도 능히 하실 수 있다. 아버지는 함께 있으면서 교제하시며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동역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신다.

 

 

 



12. 인생계획의 모든 결정권 드리는 내려놓음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용해주세요 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께 결코 양보하지 않던 결정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선교현장에서 요구하신 것은 딱 하나였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울자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섞는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자기의 자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 들어가실 자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의 틀, 고집하는 방식, 계획을 깨어버리라. 주님의 것으로 채우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시37:5).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을 따라가는 것을 없애야 한다. 십자가의 좁은 길은 더딘 길같이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이다. 내가 계획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것이 항상 더 좋았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원한다면 미래의 계획표를 내어드리고 그저 신뢰 하면서 하루하루 기다리며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에 있다.

하나님만 바라는 훈련을 요구하신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하거나 힘들어하는 정도만 봐도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이 바로 드러난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사명은 성공이 아니고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일이었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숙의 표징이다. 나의 독립형에서 하나님 의존형으로 바뀌는 것이 성숙의 기준이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숙의 표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 영역이다. 너의 사명은 내가 네게 준 말을 전하므로 너의 할 일을 다 했다.




13. 온전한 내려놓음

 

 


자아를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는 바울의 경지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의 목적을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에 내 목표가 부합되도록 맞추어 가는 것이다. 하기싫은 일이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겠다고 순종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할줄 아는 것이다.

주님의 뜻을 알면 그 일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은 변덕을 부리는 분이 아니며 일관되게 인도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안에서의 내려놓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단순히 비워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부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구체적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위험하고 부가 인간 타락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것들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자이의 이다.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갈수록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은 하나로 합해진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내려놓음이 의미가 있다.

사역은 귀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14. 내 노력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채워질 때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아버지의 긍휼히 여기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롭다 인정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성령님께 간구하고 탄식했을 때 주님이 주시는 변화를 덧입는다. 성령님의 지속적인 기름부음은 좀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느낀점)

 

나에게는 주님을 온전히 알아간다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전능하신 나의 주,  전지하신 나의 주, 무소부재하신 나의 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

그 주님앞에 못내려놓을 것도 없지만 실제로 삶에서 고생해본 경험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선교사의 용기있는 결단과 주를 위한 헌신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가 날마다 죽노라 말한 바울처럼 주를 섬기며, 주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 위해서

새로운 각오와 더 내려놓는 자리에 까지 나아가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예수를 위하여 무엇인들 못하겠나? 

나를 이기는 법을 성령님께서 날마다 가르쳐주시기를 원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나를 인도하시기를 원한다.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외에 다른 것은 시시하게 보인다.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가

영광을 바라보는 이땅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해 나를 버리면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좋은 친구 신실한 친구이시다. 나도 선교사처럼 삶의 현장에서 내려놓기로 한다.  

주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도 주님을 안타까워 하시도록 할수없다.

내가 망가지더라도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