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요약한 것처럼 인간은 전적부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죄는 영을 죽게했고 영적 지적 부패 무능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 양심의 가책은 우리의 본성 속에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깨달음은 인간의 지성으로 얻을수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개는 주님이 주신 것이지 우리 마음밭에서 저절로 자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여러번 가르쳤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높아질려고 다투었습니다.
오늘날도 내면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이해력이 아니라
하니님의 능력으로만 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기력하고 부패한 죄인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서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세속화의 불가능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회피하면 옛습관이 남아서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는 죄를 짓게하는 사탄을 이기고 부끄럽게 하였습니다(골2:15)
십자가앞에서 회개하는것은
세상을 향해 죽는 경험입니다.
한알의 밀알이 죽는 것과 같은 경험입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열매는 일하는 것에 있지않고 죽는데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려면 죽는 회개가 있어야하고 십자가를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진 때가 언제였습니까?
바울은 복음을 전할때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농담을 건네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술수나 방법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음악이나 악기를 수단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혜의 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습니다(고전2:2).
그는 십자가의 능력을 확신하고 자랑했습니다.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소서
좁은 소견과 편협한 생각과 무가치한 것에 관심을 빼앗겨
복음을 욕되게 한 죄를 용서해주소서.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십자가의 구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
이 진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놀랍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밖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우리의 증인되지 못한 삶으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매우 작고 좁고
약한 것으로 보이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교회에 나와 복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소서.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하소서.
'십자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십자가와 온유한자 (0) | 2025.12.08 |
|---|---|
| 십자가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0) | 2025.12.08 |
| 십자가와 마음이 청결한자 (0) | 2025.12.08 |
|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영 (0) | 2025.12.08 |
| 십자가와 나 (0) |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