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자는 누구인가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
허허,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수괴”라고 구속되었다. 대통령이 내란 주모자라니,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켜 국민을 학살했는가, 나라를 팔아먹었는가, 자기 손안에 있는 정권을 자기가 빼앗았단 말인가.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이 무슨 해괴한 변란인가. 더구나 현직 대통령이 감금되었는데 이 환호성은 무슨 개가인가. 그 우쭐하던 대한민국이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무산되자마자 야당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란이다!”를 외쳐댔고 이 바람몰이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가 성공하더니 기어이 체포까지 되고 말았다. 지금 온 나라가 흡사 화재 현장이다. 야당이 “불이야!”하고 소리 지르니 너도나도 “불이야!” 하지만, 정작 어디에 불이 났는지, 비상계엄이 내란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온통 “반란”을 불티처럼 날리며 주줄이 “내란 동조”로 잡아가고 “내란 선전”으로 옭아매고, 온 나라가 “반란”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우성인데, 불길은 어디 있는가, 반란자는 누구인가.
윤 대통령의 급작스런 비상계엄 선포가 정말 내란죄인가.
계엄의 목적에 대해 대통령은 “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심지어 예산 탄핵까지 감행하여 국정을 마비시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으므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여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대통령이 국회의 헌법상 권리인 탄핵과 정부 예산 편성에 대한 견제권 행사에 불만을 품고 국회를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맞선다.
어느 쪽이든 계엄의 동기가 야당의 탄핵 연발에 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탄핵 남발이 계엄을 유발한 것이다. 그런데도 계엄사태가 나자 야당은 대통령에 대한 형사 소추는 내란죄나 외환죄만 가능하다는 헌법 규정을 의식하여 이것을 내란죄로 몰고 갔고 이 내란몰이에 휩쓸려 모든 언론이나 많은 국민들도 우루루 계엄 자체만 내란으로 물고늘어졌지 빌미를 제공한 야당에 대해서는 싹 입 다물고 한 마디도 언급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야당의 탄핵 남발은 정당했다는 말인가.
하도 답답하니까 명가수가 한 마디 했다.
“왼팔, 니는 잘했냐?”
이에 대해서는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총장의 신년 벽두 한 일간지 기고에 명확한 대답이 있다.
“비상계엄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을 촉발시킨 의회권력도 책임이 있다. 지나친 탄핵 남발은 결과적으로 국헌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국회는 탄핵이라는 비상시에나 작동되어야 할 제도를 평상시에 남용하여 정부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켰다.”
형법상 내란이란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형법상 국헌문란이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폭동이란 합법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집단적인 폭력 행위로 사회의 안녕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야당은 탄핵을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 정부 견제권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 저의가 없는 단순한 견제권 행사이더라도 과도한 남발은 국헌문란일 수 있다. 하물며 탄핵 남용이 오로지 정권 탈취가 목적일 때 그것은 영락없는 국헌문란이요 더구나 국권배제요 따라서 내란죄다.
야당은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국민이 뽑은 선거에 불복하고 대통령을 흔들면서 탄핵의 핑계 수집에 혈안이었고 그 후로 끊임없이 특검과 탄핵을 연발총처럼 난사해 정부를 무력화 했다. 탄핵이라는 강압 수단으로 국가의 중추기관인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정이 마비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헌 문란이 의도적인 목적이었다. 그 강압은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집단적으로 동원한 폭력 헹위이므로 폭동일 수 있다. 아무리 합법적이더라도 한 정치 집단이 법을 악용하여 국가에 고의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폭동이다. 내란죄의 요건에 딱 합치한다. 그러므로 반란자는 야당이다. 야당이 내란죄인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은 경과야 어쨌건 그 내란을 진압하자는 것이 목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반란을 저지한다는 것이 되려 반란죄에 몰리고 있다. 야당의 탄핵 남발은 분명히 국헌을 문란하기 위해서였지만 계엄은 오히려 국헌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계엄은 즉시 해제되어 대통령의 “반란”은 금방 끝났지만 야당의 반란은 계엄으로도 진압되지 않고 오히려 격화된 채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렇더라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무모했다. 시대감각이나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야당의 탄핵 남발을 합법적이라 하여 언제까지나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통령은 그럴 경우 정부가 완전히 와해하여 무정부 상태가 될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을 것이다. 실제로 계엄 후에도 탄핵은 거침없이 이어져 지금 괴상한 형태의 불구 정부가 되어가고 있다. 정부가 궤멸하기 전에 저지를 해야 하는데 무슨 합법적 수단으로 이것을 막을 수 있는가. 국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더 참았어야 한다고 하고 야당을 설득했어야 한다고 하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어야 한다고도 한다.
대통령이 계엄의 유혹을 자제하고 더 인내했더라도 시간에 쫓기는 야당은 그 인내를 참고 있지 못해 압박은 더 가중되었을 것이고, 끝까지 참았다가 정부가 다 무너지고 난 뒤에 계엄을 선포했더라면 계엄의 정당성은 더 확보되었을는지 몰라도 대통령은 국가 유기의 책임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득이라니, 당 대표를 하늘로 받드는 일신교의 신도들에게 무슨 설득당할 귀가 있겠으며, 국민들에게 호소한들 자파 지지자들과 똘똘 뭉친 야당이 어느 국민 눈치를 보겠는가.
탄핵 남용을 위헌으로 헌재에 제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달이 걸리는 헌재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 정부는 다 망가져 헌재 결정이 나왔을 때는 수선 불가능일 수도 있었다.
대통령은 이런 강박관념에서 무리한 계엄을 강행했을 것이다. 정부를 못 지키면 그 책임은 모조리 대통령 혼자서 져야 하니 그 중압감을 대통령 말고는 모른다.
야당의 반란은 국회의 의결을 거친 것이므로 엄격히 따지자면 국회의 반란이다. 국회가 반란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회의 반란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헌법은 이에 대한 규정이 없고 오히려 국회에 계엄해제권까지 주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했을 때 그것을 즉각 해제해 버리면 그만인가.
야당은 계엄이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고 했으니 반란이라고 주장한다. 국회가 반란을 했을 때도 계엄이 봉쇄할 수 없다면 방치하란 말인가. 헌법이 국회의 계엄해제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원은 체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현행범일 경우는 국회의원도 구금할 수 있다. 야당의 탄핵 남용이 반란죄라면 이에 동조한 국회의원들은 모두 현행범일 수 있다. 실제로 국회가 완전히 봉쇄되지도 않았고 체포된 의원도 없었지만 그랬더라도 합헌이다.
지금 어지럽고 위태위태한 이 시국의 본질은 단순하다. 탄핵 남용 대 계엄 남용의 대결이다.
탄핵 남용이 없었으면 계엄 남용도 없었을 것이다.
탄핵 남용이 합법적이라면 계엄 선포도 합법적이다.
계엄의 남용이 반란이라면 탄핵 남용도 반란이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설령 위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위법 때문에 야당의 반란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은 야당의 탄핵 남발을 내란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계엄 선포문에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이 계엄군의 진입을 내란으로 단정한 것은 탄핵 남발이 내란이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탄핵 남발이 내란인 것이 확실하면 계엄은 정당하다.
반란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탄핵 남용을 반란으로 단정하여 계엄을 선포한 것이 내란이라고 한다면, 계엄이 내란죄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야당이 내란으로 단정하여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고 체포하고 “내란 타도”를 선동하고 “내란 동조”라면서 마구 구속시키고 하는 것도 그 자체가 이중 삼중의 내란이다.
야당 측의 “반란”이라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아니었으면 몇 시간 만에 끝난 계엄만 가지고는 전 국민이 이렇게까지 경악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가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온 나라의 반란소동이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급박하게 소란한 것은 야당의 시간표 때문이다. 나라의 모든 시간은 야당 대표의 호주머니 속 회중시계에 맞추어져 있다. 야당은 시간이 급하다. 온 나라가 이 시간표에 쫓기고 있고 이 시간표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국정 운용의 주도권이 정부•여당에 있지 않다. 야당이 사실상 집권당이다. 공수처는 벌써 세상 바뀌었다는 듯이 현직 대통령을 흉악범 다루듯 하고, 법원도 야당 눈치나 보고, 정부의 공직자들은 무차벌 탄핵과 고발이 비상계엄보다 더 무섭다. 공포 분위기로 정부의 모든 기능은 얼어붙어 야당이 선포권도 없는 계엄령을 선포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입법권은 물론 행정권에 이어 사법권까지 장악했다. 선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정권을 빼앗은 것이다. 이래도 야당의 반란이 아니란 말인가.
오늘의 국난은 지난 해 4•10 총선의 “국민의 승리”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국회에서 야당이 이미 개발해 시험중이던 탄핵 연발이라는 신종 흉기를 선거가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더 장려하고 국회를 범죄 혐의자의 소굴로 만들면서 그 악덕의 손으로 마음놓고 휘두르게 했다. 표의 남용이었다. 국민은 던지는 표를 남용했고 야당은 얻은 표를 남용했다. 표의 남용이 탄핵의 남용을 낳고, 탄핵의 남용이 계엄의 남용을 낳고, 계엄의 남용이 이번에는 언론의 남용까지 낳아, 이 남용의 연쇄반응이 나라를 핵반응처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통곡하고 싶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제자리에 없고 국방장관도 제자리에 없고 육군참모총장도 제자리에 없고, 국무총리도 제자리에 없고 여러 장관들도 제자리에 없고, 감사원장도 제자리에 없고, 경찰청장도 차장도 제자리에 없고, 대통령경호실 처장도 차장도 자리가 비었고…, 나라를 지킬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렇게 폐허같이 텅 빈 공동의 정부도 정부인가. 이런 위험한 금지된 장난을 불질러 불장난하듯 쑤시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라가 장난감인가. 무슨 앙심으로 대통령까지 구속하며 가공할 국가 파괴로 대한민국을 탄핵하겠다는 것인가.
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민주당 대표는 계엄 사태가 나자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왜 5천 2백만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하고 남의 말 하듯이 개탄했다.
민주당 대표는 가끔 사돈이 하는 말 같은 말을 잘도 한다.
참으로 서일필 때문에 태산이 명동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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