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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견우직녀

천국생활 2022. 12. 20. 14:33

 

황혼(黃昏)의 견우직녀(牽牛織女)

 

저희 부부가 변두리에서 조그마한 만두가게를 하던 때 일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저희 가게에 나타나시는 단골손님이셨습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시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등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하셨습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나 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곤 하셨지요.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무슨 슬픈 영화나 보는 것처럼 동시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셨습니다.

 

“대체 저 두 노인들은 어떤 사이일까?” 저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

“부부가 무엇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요. 그러고 보니 부부 같진 않네요.

혹시 첫사랑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사랑.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다 늙어가지고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런 거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밀회(密會)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역시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닌가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썩이셨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

다음 주 수요일에 오시면 제가 먼저 말을 붙여 여쭈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저희 가게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셨습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분명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 보이셨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셨습니다.

“안 와. 하늘나라로 먼저 갔어.”

 

깜짝 놀란 저희 부부는 궁금해서 어찌 된 사연인지 여쭈어보았습니다.

“나는 수원 큰 아들네 집에 살고 할멈은 목동 작은 아들네 집에 살았어.”

“그럼 두 분이 싸우셨나요? 왜 따로따로 사셨어요?”

“우리가 싸운 게 아니라 며느리들이 싸웠어.”

큰 며느리가, 다 같은 자식인데 자기만 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형제가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한 분씩 나누어 모시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날을 잡아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온 것이었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는 것이지요.

“이제 나만 죽으면 돼. 그러면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같이 살 수 있겠지, 뭐!”

 

페북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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