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거스틴은 정결한 삶을 살고 싶어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까닭은 원수가 우리 의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죄로 인해 의지가 왜곡되면 육욕이 생기고, 육욕을 제어하지 않은 채 계속 따르다보면 버릇이 생기고,
그 버릇에 저항하지 못하면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영혼의 고질병은 그렇게 우리 속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다.
사순절에는 ‘습관의 폭력’과 결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경건의 표징으로 여기는 기도와 금식과 구제의 훈련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음 삼아 우리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기도가 깊어지면 ‘나 좋을 대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이 될 꿈을 품게 된다.
금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제어하는 훈련이다.
탐식을 제어함으로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리함에 중독된 우리 삶을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화석 연료 시대의 종언이 예고되고 있는 이 시대에 탄소 소비를 줄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믿는 이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다.
구제는 이런저런 형태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을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일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 소중한 것을 나눌 때 그 물질은 정신으로 바뀐다.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이 앓고 있다.
병든 세상을 보며 하나님도 아파하신다.
하나님을 안다고 장담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하나님은 어둠 속에 계신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논둠’(nondum은 라틴어로 ‘아직은 아니다’라는 뜻)이라는 시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 영혼의 갈급함을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모릅니다, 어떻게 선물을 드려야 할지,/어디에서 신을 벗고 당신을 찾아야 하는지를.”
불붙은 떨기나무 아래 서 있었던 모세는 행복한 사람이다.
신을 벗어야 할 장소가 명확했으니 말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신념들 때문에 서로 다투고, 군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대적하고,
연민이 피를 흘리고, 진리가 갈대밭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세상에서 사느라 지쳤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더 갈급한 마음으로 한 말씀을 기다린다.
놀란 아기의 볼에 기쁨의 보조개가 피어나게 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말처럼, 우리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말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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