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 고통이라는 보편 언어

천국생활 2013. 6. 21. 14:41

• 고통이라는 보편 언어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모욕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는 단절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고통은 자존심을 훨씬 넘어섰던 것 같습니다.

여인은 그 모욕적인 말과 상황을 그냥 자기 품으로 부둥켜 안아버립니다.

그러자 갑자기 자유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긴장이 해소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일부러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다고 합니다.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거절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사소한 거절에도 자기 존재 전체가 거부되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합니다.

전도를 하면 거부와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웃음으로  반응할수있습니다.

 

이 여인이 거절에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딸의 고통으로 인해 겪어온 인고의 세월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여인의 말은 예수님께 깊은 인상을 남겼음이 틀림없습니다.

 

고통은 인종, 피부색, 문화, 정치 체계,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인류 공통의 경험입니다.

그렇기에 고통이야말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의 끈입니다.

고통의 자리에 선 사람을 외면하는 순간 인류와의 연대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잣대만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의 눈에는  문제만 보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연민의 눈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몰라서 그렇고 그들은 잠시 길을 잃은 사람일 뿐입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깃든 그늘과 상처와 눈물과 여림을 본다면 능히 그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은 프로그램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여인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 고통의 자리로 예수를 초대했고, 예수님은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경계선을 쳐놓고 삽니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휴전선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과 노동자, 신자과 불신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진 자와 가난한 자, 내국인과 이주민, 노인과 젊은이….

그러나 경계선의 한 쪽에 머무는 한 우리 삶은 편벽됨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경계선의 저편에도 삶이 있습니다.

경계선 저편의 사람들과 만날 용기를 내야 합니다.

만나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서로를 가르고 있는 경계선이라는 게 얼마나 인위적인 지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수많은 경계를 가로지른 삶이라 하겠습니다.

의인과 죄인,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거룩함과 속됨 사이를 넘나들며

그 둘을 소통시키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엡1:14-16)



고통 앞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은 무의미했습니다.

마침내 주님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했고, 바로 그 순간 여인의 딸은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익숙한 세계에만 머물지 말고

 처음에는 불편하더라도 경계선 저편의 사람들에게 다가서보라는

주님의 초대 앞에 서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수많은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사람들을 소통시키고,

마침내는 그 경계선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이 거룩한 부름에 삶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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