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아니오’와 ‘예’의 변증법

천국생활 2012. 3. 26. 11:57

‘아니오’와 ‘예’의 변증법

 

 

 


그 희망에 사로잡힌 사람들,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까지는 주님 말고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기억하겠습니다.”(사26:13)

여기서 말하는 권세자들은 다른 신들을 일컫는 말이기보다는 왕이나 이방의 군왕들을 지칭하는 말일 겁니다.

좋은 세상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해낼 거라고 혹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백성들의 복입니다.

나쁜 지도자를 만나면 역사가 퇴행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나쁜 권세자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딱지를 붙여 ‘우리’와 ‘그들’을 나눕니다.

편을 가르고, 사람들을 차별합니다. 편 가르기가 일상화된 세상은 안식이 없는 세상입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자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말들이 거칠어집니다.

이런 때일수록 근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아름답고 온전한 세상은 세상의 권세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돌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선물입니다. 요한은 그 비전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계21:2)

역사를 새롭게 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손을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불의에 대해 ‘아니오’ 하지 않는 사람은 불의의 공모자라 할 수 있습니다.

악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완성할 힘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을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기도로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파괴와 죽음의 세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처럼 악의 뿌리는 선의 뿌리와 뒤엉켜 있습니다.

쉬운 해결책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며 의를 배울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세상 속에 살면서도

생명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낙심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배우 차인표 씨가 T.V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지하지만 유쾌하고, 참으로 기독교적이지만 티를 내지 않고, 헌신적이지만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강박하지 않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자기들 속에 있는 아름다운 가능성을 본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죽음의 세력에 대해 ‘아니오’ 하는 동시에 생명과 평화의 징조를 향해 ‘예’ 함으로써

우리 삶이 주님의 생명과 하나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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