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목사(청파교회)

사랑의 상호성

천국생활 2012. 1. 30. 13:39

사랑의 상호성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자리,

특히 소외된 삶을 사는 이들의 자리에 다가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에 대해 말하면서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롬12:16)라고 말합니다.

 

그 앞에서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어느 순간 제 마음에 들어온 깨달음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릴 가장 귀한 행복을 지금 고통받는 이들 속에 숨겨두셨습니다.

그들 곁에 다가서고,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의 짐을 나눠지려 할 때

그 행복은 슬며시 우리를 찾아옵니다.

뇌과학이나 신경심리학은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인간이 행복을 느낀다는 과학적 근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가 가진 공감 능력입니다.

 

과학자들은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거울 신경세포가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감정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고통, 행복감, 수치심과 같은 사회적 정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공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길을 잃은 양과 같은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포옹은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표시입니다.

포옹은 내가 다른 사람을 안는 행동인 동시에 내가 타인에게 안기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길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부둥켜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고통을 얼싸안는 마음, 그 사랑의 마음 하나 얻으라고 주님은 우리를 산 자의 땅에 머물게 해주십니다.

무정한 세상, 난폭한 세상에서 사랑의 순례자로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의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사랑을 쏟아 부어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치고 낙심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는 어떤 행동도 무의미한 것, 무가치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뿐입니다.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눈을 흘기지 마십시오.

비난의 돌팔매질을 하지도 마십시오.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돌보아주십시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14)

이 마음이 없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약하다 하여 몰아내고, 무능하다 하여 배제하고, 힘없다 하여 외면하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입 없는 이들의 입이 되어 주는 일이야말로

 기독교인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이 거룩한 소명에 응답하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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