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목자는 어떻게 할까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아흔아홉 마리가 흩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이 더 복잡해질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염려는 이 비유를 비유로 보지 않고 현실로 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비유의 초점은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었을 때 그 공동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합당한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외경인 도마복음서는 99 vs. 1이라는 이 극단적인 대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조금 다른 접근을 합니다.
길 잃은 양이 무리 가운데 가장 큰 양 곧 가장 가치 있는 양이었다는 것입니다.
도마복음서에서 목자는 양을 찾은 후 “나는 다른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이렇게 대조적으로 설명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마리의 양은 그 틀을 깨치고 나가 방황도 하고
아픔도 경험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집을 나갔던 탕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비유를 영적인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읽는다면 이런 독법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공동체 안에서 혹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실패자처럼 보입니다. 변변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해 떠도는 사람들, 변두리로 밀리고 또 밀리다가
마침내 거리에 나선 사람들…. 그들은 화려한 문명의 이면을 폭로하는 사람들입니다.
휘황한 소비의 낙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업신여김이 우리 마음에 파고드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참 목자는 그 양을 쓸모없다 하여 버리지 않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양은 그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참 부모는 자기 자식이 못났다고 하여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사랑으로 그를 돌보아줍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를 돌보는 동안 이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생의 기쁨을 맛본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일본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참 좋아합니다.
1963년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아들인 히카리는 태어나자마자 두개골 뒤쪽에 달린 머리만큼이나 큰 적색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이 낯선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오에는 고통에 흠뻑 빠져들고자 히로시마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인생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째 되는 날, 그는 그 깊은 우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를 찾았습니다.
원폭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그곳 사람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사고와 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나는 그곳의 여자들과 남자들의 고통에다 내 고통을 심은 채, 그들처럼 견디고 그들처럼 싸우기로 마음먹었어요.
나는 나의 생각들을 돌이켜보았고, 존재에 대한 도덕적 의미를 받아들였어요.
그날 이후, 나는 히로시마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어요.”(사비 아옌/킴 만레사, <16인의 반란자들>, 39쪽)
히로시마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자 그의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 눈으로 보면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이 낯설고 추하고 불쾌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존재야말로 우리를 사람다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주는 돌쩌귀인지도 모릅니다.
--문학평론가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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