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요약
시편 107편을 중심으로 찬양할 이유를 강론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소망 없고 무기력한 비참함을 바르게 보게 하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과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진정한 감사와 감격으로 참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수 있도록 인도하는
로이드 존스의 강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동일한 인생의 근본 문제에 맞추어 철저한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07편 1-3절은 찬양과 감사의 노래이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우주적인 찬송을 부르기 위해 함께 나오라고 초대하고 있는 시편의 장면입니다.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감사가 큰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힘겨운 상황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라는 빛 속에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은 핍박과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뻐할수있게 하기 위해 닥쳐올 영광을 기록한 책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매우 정확한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삶에는 감사함이 없습니다. 찬양이 없습니다.
감정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기독교와 철학의 차이입니다. 기독교는 전인격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그리고 그것이 바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찬양하지 않는 것보다 더 끔찍한 죄는 없습니다.
자기 만족을 구하는 자의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단히 훌륭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은 연합을 가져옵니다. 공통분모가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망을 경험했을 것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을 발견한 자들입니다.
새로운 성품과 생명을 복으로 받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지도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죄를 이길 힘을 주신 하나님이 목자처럼 우리를 인도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은 찬양에 동참할수있는 것입니다.
4-9절에서는 광야의 그림을 보면서 길을 잃은자 그리고 진리에 대한 추구와 길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할때부터 인간은 황무지인 광야에서 헤매며 찾고 구하지만 인도해줄 길을 몰랐습니다.
우리 인생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입니다.
늙음이 찾아 오고 있습니다. 밤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있습니다.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습니다.
그때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합니다. 세상에는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길이 없음을 알게됩니다.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방황하는 인생에게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방황하든 어그스틴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우리 영혼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0-16절에서는 감옥의 그림을 보면서 갇힌 자들에 대하여 죄는 무엇인가 죄의 결과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구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을 특징짓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과 교묘함입니다.
사탄은 오늘날도 좁고 구속하는 제한적인 종교적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곳은 결국은 감옥입니다.
광야를 헤매는 인간을 유혹하여 감옥에 가게 만듭니다.
하나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죄의 종이 되게 하여 감옥으로 보냅니다.
교만한 사탄은 인간을 교만하게하고 무지하게 만듭니다. 무지가 습관이 되면 그것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나올수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찾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수 밖에 없습니다.
17-22절에서는 끔찍한 질병의 그림을 보면서 죄는 무엇인가를 다시 다루고 하나님의 치유와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죄의본질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죄의 종이 된 인생은 죽음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죄란 죄악의 길을 따르는 것(transgress)입니다.
육체의 건강법을 어기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과 자연의 법칙이 아닌 다른 길을 따라가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스스로 고난을 만들어 냅니다. 점점 어리석어집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최선의 길을 찾아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최악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뿐 결코 어떤 것을 주지 않습니다. 죄는 순결함, 순수함, 고상함을 빼앗아 갑니다.
균형과 판단력을 빼앗아 갑니다. 내면의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참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분별력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에게 병의 근원을 없애고 진행을 멈추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존재로 채우십니다. 근심의 자리에 기쁨의 영이 임하게 하십니다.
진정한 건강, 생기 넘치는 성품이 임합니다.
우리는 어떤 변명도 하지 말고 모두 인정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23-32절에서는 잔혹한 폭풍의 그림을 보면서 광풍과 힘겨운 인생의 항해와 하나님의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곤경,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그분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과학의진보와 쾌거, 인간승리...그러나 파도는 멈추지 않습니다.
분노의 폭풍, 정욕의 파도, 열정의 파도, 자기의지의 폭풍,
시련과 고난의 폭풍, 질병의 폭풍, 전쟁과 지진의 폭풍, 인생이 운명의 주인이라면서 항구에 도착한 즉이 없고
문명의 철저한 몰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거대한 광풍을 고요하게 하여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잔잔함과 평안을 주십니다.
모든 경우 모든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생명과 새로운 방향 감각을 주십니다.
평온과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이 줄수없는 기쁨 세상이 알수없는 평안이 주어집니다.
우리를 영원한 항구로 인도하시니 안심하고 기쁘서 찬양할수밖에 없게 됩니다.
33-43절에서는 성경에 대하여 다루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 모든것의 반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하나님의 종이며 설교자이면서 시적인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이며 영혼의 지침서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다시는 하지 못할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수없이 말하고 있는
위대핮 주제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확신할수 있는 것은 모든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하나님의 손안에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이 세상에서 인생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진정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오늘날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심과 능력이다 라는 것이 성경의 위대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신분이나 사회적 차이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능자의 눈에는 특권 계급이 없습니다.
그러한 심판자이십니다.
35-38, 42,43절을 다시 설명하면서 진정한 기독교와 구원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성경전체의 메시지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과 대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분을 피할수없고 빠져나갈수도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생각과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모든 자랑할만 한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영광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수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수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공허함과비탄함 그 상황을 깨닫는 것입니다.
회개 그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으며 자신은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마틴루터는 그것을 깨닫고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특징은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며 마른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하시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성도들을 설득해서 무엇인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그 일을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광야였으나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솟아나는 샘물이 되었습니다.
삶은 단지 고통과 회한 후회 속에서 끝나는 떠들썩한 자리나 쾌락을 추구하는 무대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영원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삶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생을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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