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 문제

청교도의 주일 성수

천국생활 2009. 11. 27. 10:23

청교도의 주일성수(본 내용은 '진리의 깃발'60-70p의 요약본 입니다)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경건생활중의 하나는 주일성수이다.

특별히 청교도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미국 북 장로교의 중국선교사이었던 존 네비우스 선교사가 교회 개척원리 중 하나로서 주일성수를 강조한 결과였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청교도들의 주일성수 혹은 크리스챤의 안식일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실천 사항들을 살펴보겠다.

1. 역사적 배경

1590년대, 즉 엘리자베스 여왕의 말기 시대에 이르렀을 때 일반 영국인들은 무신론자와 같이 생활하였다. 사회 전체에서 기독교의 흔적 찾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였다. 주일 오후에 연극과 오락과 펜싱 경기를 하고, 사격 볼링, 테니스와 댄싱(dancing)같은 것으로 보냈다. 때로는 목회자들도 이것을 구경하거나 참가하였다.

이때 청교도들은 경건이 무너진 것에 대해 슬퍼하면서 “주일성수”에 대하여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청교도 리차드 그린햄(Richard Greenham)은 1529년 사회전체에 만연된 경건치 못한 풍조를 개탄하면서 주일을 온전히 지킬 것을 나라 전체에 촉구하였다.

그린햄의 영향을 받은 니콜라스 바운드(Nicholas Brownde)는 1595년에 안식일에 대한 책(True Doctrine of the Sabbath)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문제는 영국 국교회와 청교도를 뚜렸하게 구별하여 주는 것이 되었다.

더욱이 영국 국교회는 1618년에 청교도의 주일성수에 반대하는 스포츠 문서(The Book of Sports)을 출판하여, 청교도들에게 교회에서 읽을 것을 강요하였다. 청교도들은 스포츠 문서를 거부하였다. 리차드 바이필드의 경우 스포츠 문서를 교회에서 읽는 것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하여 정직 처분을 당하기도 하였다.

1590년 이전까지의 청교도운동은 교회의 구조개혁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 부었으나 성취된 것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1590년대 이후부터 청교도 운동은 주일성수의 강조와 함께 경건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2. 안식일의 도덕적 영속성

칼빈은 십계명의 제 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한 안식일 계명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폐하여 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칼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교도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인간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두 개의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는 나무들에 대한 계명이며, 다른 하나는 안식일의 준수라고 설명하였다. 더욱이 퍼킨스는 설명하기를, 안식일을 거룩히 하라는 것은 예배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예배할 때 비로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퍼킨스는 안식일의 도덕적인 성격과 영속성을 상당히 강조하였다.(William Perkins, The Order of Salvation and Damnation, 23장)

월리엄 가우지(William Gouge)는 그의 작품 “Sabbath’s Sanctification, 1641”에서 안식일 계명의 도덕성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안식일의 도덕적 성격과 영속성에 대한 철저한 논쟁을 한 청교도는 토마스 쉐퍼드(Thomas Shepard)이다. 쉐퍼드는 그의 작품 “Theses Sabbaticase, or The Doctrine of the Sabbath, 1650”에서 안식일의 영속성과 주일로 변경된 것에 대해서 신학적 논증을 하였다. 이 작품은 나중에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안식일의 영속성이 중요하다면, 어떻게 복음 시대에 주중의 첫째 날로 바뀔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토마스 쉐퍼드는 그의 안식일 교리의 작품에서 철저히 논증하였다. 즉 4계명에 대한 말들은 어느 날이 반드시 안식일로 지켜져야 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특정한 날이 안식일로 정해진 언급이 처음 나오는 곳은 출애굽기 16:23~26절인데 그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복음시대에서 제 4계명은 다른 방식으로 정해진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킬 수 있으며, 안식일에 대한 의미는 손상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서 그들의 노동하는 날의 시작과 끝이 정하여 진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주중의 첫째 날로 계승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그 날은 주일(Lord’s day)이라고 부른다.(토마스 왓슨, 십계명)

3. 주일 성수를 위한 실천 사항들

청교도들이 주일을 ‘크리스챤의 안식일’이라고 부른 것은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지 위한 열망이 상당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실천 방안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으로 분리하였다. 우선 소극적인 방법으로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토마스 왓슨은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반드시 세상의 모든 업무들을 뒤로 물려야 함을 말하였다. 일상의 모든 일은 주일 이전에 혹은 주일 이후에 행하라고 하였다.

윌리엄 퍼킨스 역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례들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를 위한 일을 하는 것, 불필요한 여행을 한다거나, 상업행위를 하는 것,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거나, 추수를 행하는 것, 운동을 하거나, 연회를 베푸는 것은 주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로 여겼다.

적극적인 방법으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윌리엄 퍼킨스는 안식일(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성별하여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안식일을 거룩히 하기 위해서는 엄숙히 준비해야 함을 청교도들은 강조하였다.

왓슨은 주일을 준비함에 있어서 토요일 저녁부터 자신의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퇴각시켜서, 다가오는 날의 위대한 일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러한 토요일의 준비는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아서 안식일에 의무를 행하는데 더욱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말하였다. 왓슨은 안식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만약 안식일 전날 늦게까지 앉아서 일 한자들은 깊은 잠에 빠져서 안식일 아침에 일찍 일어날수 없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십계명,김기홍역)

주일 아침에 해야 할 일들로서 청교도들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왓슨은 주일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공예배를 반드시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가정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였고, 우리의 대화는 거룩하고 은혜로운 말들을 하여야 하며, 성도들을 만나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말만 하라고 하였다. 왓슨은 또 안식일 저녁에 해야 할 일도 설명하였는데, 안식일 저녁에는 말씀을 암송하고, 시편을 노래하고 기도함으로 끝 마치도록 권면하였다.

결론: 주일성수의 선교적 의미

청교도 이후에 교회사를 통하여 특별히 18세기와 19세기의 미국 장로교역사를 보면 크리스챤의 안식일이 청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은혜의 수단이었음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 할 수 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여부를 가지고 교회의 영적상태와 경건의 능력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주일 성수는 교회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는 영적 온도계의 기능을 하였다. 제 4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제1계명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계명도 무시되는 것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로 인해서 청교도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크리스챤의 안식일을 교회 개혁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러한 주일성수의 선교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엄격하게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세상은 종교를 정면으로 대하게 된다. 안식일을 잘 지키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공경하는 것의 외적이고 공적인 모습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안식일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즉 대중 가운데 혹은 사회 속에서 종교의 가시성을 견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청교도의 유산을 받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구 시대의 유물과 같이 취급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목회자에게서 조차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 개혁을 외치고 있다. 교인들의 삶 속에서 신앙고백과 삶의 불일치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을 고치기 위한 은혜의 방편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청교도들이 교회 개혁을 위한 방편으로 크리스챤의 안식일, 혹은 주일 성수에 대해 강조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