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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리더십

천국생활 2009. 4. 29. 09:42

4/28일 충무공 탄신일

 

이순신 장군 전승지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역시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이었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의 묘사 그대로, '겨울 산속의 짐승 울음 같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물이 물을 밀쳐내며 뒤채는 모습'은 뭍에서 바라봐도 멀미가 날만큼 두렵게 느껴졌다.

'도대체 장군은 무슨 생각으로, 가만히 서서 버티기도 힘든 이 사지(死地)에 자신의 운명과 목숨처럼 아끼는 부하들과 국운을 걸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군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경우의 수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빈약한 조선수군을 생각할 때, 아군의 피해가 조금이라도 발생하는 승리는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의 피해도 없이 왜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었다. 차라리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왜군의 배가 불타기를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만큼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손자병법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명장은 패색이 가장 짙은 순간을 승리의 기폭제로 삼는다.' 장군도 손자병법의 저 구절을 떠올렸었을까? 장군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최악의 조건들 속에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이기는 것에 비길만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하다.

왜군에 대한 공포감과 사기 저하라는 패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병사들, 그나마도 수적으로 절대 열세, 가만히 서서 적을 기다리는 것도 불가능할 만큼 아군에게는 불리하고, 반대로 왜군의 입장에서는 그냥밀고 지나가면 이길 수 있을 만큼 유리한 조류. 그 무엇 하나 장군에게 호의적인 조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장군은 이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했었음이 분명하다. 장군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자신과 병사들의 집중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명량 앞바다를 선택했다.

위에 열거한 모든 악조건들은 예전 같았으면 장군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 감히 마주쳐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왜군들로 하여금 장군과 조선수군을 얕잡아 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걸핏보면, 조선수군은 칼날 끝을 부여잡고, 왜군들이 칼자루를 쥔 형국이지만, 장군은 칼날 잡은자의 절박함과 칼자루 쥔 자의 오만을 명량 해협이라는 천혜의 요충지에 절묘하게 녹여내어 절망의 잿더미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항상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일지 모른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집단 자살과 무엇이든지 쉽게 이루려 하고, 약간만 힘들어도 금방 포기하려는 나약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개인과 조직이 절망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약점들을 강점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을 평소에 준비한다면, 인생이든 경영이든 무엇에서나 크게 성공하리라 믿는다. 인생과 전쟁과 역사에서 모두 승리하셨던 장군처럼 말이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