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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 이야기

천국생활 2024. 10. 5. 15:41

♡ 눈물 한 방울 이야기

몇몇 고교 선배들과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어령 교수였어.
아직 이십 대의 천재 선생이 칠판에 두보의 시를 써 놓고 해설을 하는데 황홀했었지.”

경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대학으로 옮겨 교수가 되고 대한민국의 지성의 아이콘이 됐다.
그리고 22년 2월에 돌아가셨다.

말하던 그 선배가 덧붙였다.
“그 양반은 낮았던 대한민국의 정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거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

나라마다 민족의 나침반이 된 선각자나 천재들이 있다.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 무렵 일본의 방향을 서구화와 민족주의로 잡고 교육에 헌신했었다.

'우찌무라 간죠'는 6평 다다미방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동경대학 총장이 나오고(4명), 교육부 장관이 나왔다(4명).
'오오히라' 수상도 이 성경공부에서 배출되었다.

그는 "일본이 침략을 멈추지 않으면, 가마사마(하나님)께서 일본 하늘에 불벼락을 내릴 것이다" 경고했다.
그의 경고대로 히로시마, 나카사기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각자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그는 미국에서 도박과 술에 찌든 조선인 노동자들을 개화시키고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족혼을 일깨웠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모은 돈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다.
귀국해서는 전국을 돌며 연설로 애국심을 고취했고, 재일본 한국 유학생들 앞에서도 민족의 자존감을 심었다.

이어령 교수도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 교수가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할 무렵, 짧은 소감을 담은 시사 잡지를 보고 메모를 해 둔 것이 아직 남아있다.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면 빨리 줄기에서 떨어져야 하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물러앉아야 해요.
새잎들이 돋는데 혼자만 남아있는 건, 삶이 아니죠.
갈 때 가지 않고 젊은 잎들 사이에 누렇게 말라 죽어있는 쭉정이를 보세요.”
그는 ‘아직 윤기가 있을 때 가을바람을 타고 땅에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귀중한 철학이었다.
죽음에 적용해도 될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어쩌다 화면에서 본 이어령 교수의 얼굴에 골 깊은 주름이 생기고 병색이 돌았다.
어느 날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그의 모습이 보이고, 얼마 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떻게 병을 맞이했고 죽음 앞에서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현자의 죽음은 많은 걸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어령 교수의 부인이 말하는 장면이 흘러나오는 걸 봤다.

“남편은 항암치료를 거부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는데 항암치료를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남편은 남은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다른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남편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남편은 컴퓨터로 글을 썼어요.
남편은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날마다 일지를 썼어요.
그날그날 생각나는 걸 가장 자유로운 양식으로 쓴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손가락에 힘이 빠져 더블클릭이 안 되는 거예요.
남편은 손 글씨로 글을 썼어요.
처음에는 글 사이에 그림도 그려놓고 했는데 점점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거예요.
그림도 없어지고 갈수록 글씨도 나빠졌어요.
건강이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거죠.”

그는 무너져 내리는 몸을 보고 어떻게 했을까?
그에 대해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걸으려고 애를 썼어요.
일어났다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곤 했어요.
그러다 걸을 수 없게 된 걸 깨달았을 때 그렇게 펑펑 울더라구요.

머리가 좋던 남편이 기억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치매가 온다고 생각하고 또 펑펑 울었죠.
남편은 두 발로 서서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했어요.

중년의 미남이었던 그의 장관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위에 금가루라도 뿌린 양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녹이 슬고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다음 순서인 죽음을 그는 어떻게 대면했을까?.
인터뷰 진행자는 이어령 선생께 질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고, 탄생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라고 하신 말씀에는 변함이 없으신가요?

"이 질문에 이어령 선생은 그의 생각이 여전히 변함없음은 물론, 생은 선물이며 내 컵의 빈 공간과 맞닿은 태초의 은하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선생은 여태껏 살아있는 의식으로 죽음을 말해왔다며, 진짜 죽음은 슬픔조차 인식할 수 없기에 슬픈 거라고 하시며 인사 말씀을 덧붙이셨다.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어요. (...중략)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선생은 딸의 죽음과 함께 기독교 신앙을 늦은 나이에 받아드렸다.
그런데도 늦게 형성된 그의 신앙관은 확고했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접근했다.
명석한 두뇌로 스스로 깨달은 영성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다"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절대자로부터 받았다는 깨달음이다."

특히 신학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인 '삼위일체'를 동양의 사상으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천(天), 지(地), 인(人)의 '삼태극' 사상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이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각각이 아닌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에서 셋이 나오고, 셋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오묘한 진리로 풀었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는'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 파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듭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편안한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152면)

이어령 선생은 병원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집에서 가족과 함께했다.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편은 보통사람보다 열 배 스무 배 예민한 예술가였어요.
죽음 앞에 강인하지 않았어요.
고통과 죽음을 너무 민감하게 느꼈어요.
너무나 외롭고 두려운 심정을 자신의 글에 그대로 표현했죠.

남편은 노트에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라고 썼어요.
그 노트를 다 쓰고 ‘눈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책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노트 스무 장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갔어요.

듣고 있던 인터뷰의 진행자가 물었다.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말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못 찾은 거죠. 죽어봐야 알 것 같다고 썼어요.”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제목으로 정한 ‘눈물 한 방울’의 의미는 뭐라고 보시나요?”
“자기를 위한 눈물이 아니예요.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게 진정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남편은 남긴 거예요.”

거실 깊숙이 2월의 햇살이 비쳐 들어온 어느 날.
선생은 천천히 넘어가는 태양의 온기를 즐기셨다.
그리고 2022년 2월 26일 정오경.
환한 대낮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음과 따뜻하게 포옹하셨다.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 앞에 정직해져야 할 것 같았다.
지인이 보내 준 윗글을 읽으면서 함명춘 시인의 '종(鐘) 이야기' 가 떠올랐다.

〘종(鍾) 이야기〙

그의 몸은 종루였고 마음은 종루에 걸린 종이었다.

종에선 날마다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아무리 귀 기울여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종소리였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까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땀방울과 눈물을 흘렸던 그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주일에 한 번씩 그가 행했던 일을 따랐다.

날이 갈수록 종소리는 점점 더 크게 더 멀리 울려 퍼져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귀 기울여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의 종소리라고 불렀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다.
사랑의 종소리가 매일, 매시간, 일생을 통해 계속 들리지만 귀가 닫힌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욕심에 귀가 막힌 사람은 듣지 못한다.
교만에 귀가 막힌 사람도 듣지 못한다.
시기와 질투에 귀가 막힌 사람은 듣지 못한다.
열등감에 귀가 막힌 사람도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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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카톡으로 받은 스토리에,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읽었던 내용과 다른 데서 따온 신앙의 글을 보태어 ‘믿음생활’ 가족에게 올립니다.

저에게 감동이 온 구절은 이어령 박사의 임종의 모습입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는데 항암치료를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남편은 남은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거실 깊숙이 2월의 햇살이 비쳐 들어온 어느 날.
선생은 천천히 넘어가는 태양의 온기를 즐기셨다.
그리고 2022년 2월 26일 정오경.
환한 대낮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음과 따뜻하게 포옹하셨다”.

저와 우리 부부의 임종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병원과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내 뜻과 의지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일이긴 하지만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편안한 마음으로 낮잠을 자듯이 그렇게 내 영과 혼이 낙원으로 올라가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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