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책
우리나라에 입국한 첫 개신교 선교사는 1832년(순조2년)에 입국한
칼 귀츨라프(Karl G.F. Guitzaff, 1803-1851)로 알려져 있습니다(이상규박사, 한국교회사).
그는 유태계 독일인이었습니다. 조선 해안에 머물면서 한국교회사에 뜻깊은 일을 두가지 하였습니다.
그가 주기도문을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한 일과 약 한달 정도로 전도하며
감자 심는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김인수 교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토마스 (Robert J.Thomas)는 영국인으로서 두번째 선교사로 조선 반도까지 들어와 복음을 전해준
개신교 선교사 이면서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한문성경’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떠납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부풉니다
런던 선교회에서도 이 성경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인간의 과오가 혼합되지 아니한 심정으로 미지의 나라로 떠나는
나의 노력을 언젠가는 인정해 주리라 믿으면서 나는 떠납니다.”
그가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통역 겸 안내를 맡고 출항하기 전 런던 선교회에 보낸 마지막 편지를 보냈습니다.
토마스는 1840년 8월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났습니다.
1859년 런던대학교 뉴 칼리지에서 대학과정과 신학과정을 마치고 24세의 나이로 영국 하노버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의 상해에 파송 받아 왔습니다.
부인 캐롤라인은 중국에 도착하자 마자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처음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충격으로 런던선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결국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그는
런던 선교회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국 산둥성으로 가 해상세관에 통역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중국에 공물을 보내던 사신 일행인 ‘동지사’를 만나면서 조선 내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많은 천주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가운데,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의 윌리암슨(Williamson) 목사를 만나 다시 선교의 열정을 회복하며
조선에 대한 선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1865년 9월 4일 조선으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되어
윌리암슨이 준 많은 한문 성경을 가지고 황해도 연안의 창린도 자자리 군포에 도착하였습니다.
약 2개월 반 동안 섬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며 한국어도 배우며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재차 조선 본토로 들어갈 것을 기대하던 중에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에 상업차 간다는 소식을 듣고
통역겸 안내로 동승하게 되어 1866년 8월 21일에 외포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500여권의 성경을 나누어주고 평양으로 향하지만 쇄국정책으로 조선은 긴장상태에 있었습니다.
제너럴셔먼호의 선장은 협상을 유도해 '이익현'을 감금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조선은 탑승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 됩니다.
대포와 불화살을 쏘면서 셔먼호를 좌초시키는 와중에도 토마스 선교사는
배에서 육지를 향해 한문성경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육지로 이끌려 칼로 목을 베이기 전까지 성경을 전해주기 바빴습니다.
1866년 9월 3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목사는 대동강의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다.
토마스선교사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뿌렸던 성경은 그의 목을 벤 박춘권을 변화시켜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게 하였고
조카 박영태도 예수를 믿고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레이널즈의 조사가 되었고
한국인 성서번역위원의 한 사람으로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순교당시 12살로 현장에 있었던 최치량이 성경을 3권 주워 집으로 가지고 갔고
그중 한권을 평양감청 경비였던 박영식에게 선물했는데 박영식은 그 성경책으로 방을 도배하는데 뜯어 썼습니다.
박영식은 도배가 된 성경 말씀을 앉아서도 읽고, 누워서도 읽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내어놓았는데 그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널다리골 예배당이 바로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중심 장대현 교회의 전신입니다.
최치량도 자라서 성경책을 주막집 방에 도배로 사용하였고 그 주막집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벽지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서툰 조선말로 외친 ‘예수’의 이름과 한문성경은
이 땅의 복음의 문을 연 시작이었고
변화의 불길을 일으킨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성경책만 전해주고 목사로서의 일을 다하지못한 허무한 죽음 같이 보였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성경책의 위대한 힘으로 조선 선교의 씨앗이 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할렐루야!!!
---장대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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